고물가에 질린 소비자 "쇼핑 기준은 가격표"

지난달 이마트에서는 수입 과일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국산 과일 매출을 앞질렀다. 올 초 이상(異常)한파로 귤과 딸기 가격이 1년 전보다 20~40% 오르자, 소비자들이 값이 싼 수입 포도와 오렌지 등으로 대거 돌아선 것이다. 롯데마트에서도 올 1분기 수입 포도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4% 늘었다. 수입 키위 매출도 40%가 뛰었다. 국산 과일 중에서는 값이 덜 오른 배와 단감 판매가 35~40% 늘었다.

실속·절약형 소비가 유통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소비자들이 한 푼이라도 싼 '대체재'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본지가 대형마트 3사(전국 매장 365개)와 기업형 수퍼마켓(SSM) 1000여곳, 3대 백화점, 온라인쇼핑몰과 가전양판점 하이마트의 올 1~3월 판매를 분석한 결과다.

①한 푼이라도 싼 '대체재'로 간다

갈치·꽁치·삼치 등 '3치'는 올 초 가격 폭등의 여파로 소비가 크게 줄었다. 롯데마트에서 '3치' 매출은 12~23% 감소했다. 수산물 중 최악의 실적을 냈다. 반면 어획량이 늘어 값이 내린 조기·고등어는 매출이 15% 올랐고(이마트), 저렴한 반건조 생선도 1년 전보다 매출이 76% 신장했다(롯데마트). 3월 이마트 수산물코너 매출의 절반은 값이 싼 수입산이 차지했다. 이마트 측은 "소비자들이 보다 싼 값을 찾으면서 이젠 수입산 생선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졌다"면서 "불황 후폭풍"이라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에서 한 벌에 40만~50만원대에 달하는 고어텍스 재킷류는 매출이 1년 전보다 20% 감소했다. 하지만 실속형 원단으로 만든 20만~30만원대의 재킷류 판매는 35% 늘었다.

②1등의 굴욕… PB·저가제품이 대세

대형마트들이 자체 기획해 가격을 낮춘 PB 상품 판매도 강세를 보였다. 이마트에서 가공식품 전체 매출은 13% 성장했지만 저가 제품 매출은 30% 늘었다. 롯데마트의 경우 우유·생수·잼 등 20종의 PB상품이 해당 품목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PB상품 매출이 이렇게 치고 올라온 적은 창사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선호해 온 업계 1위 브랜드들은 고전하고 있다. 롯데슈퍼에서 대상 찰고추장은 매출이 30% 이상 감소한 반면, 값이 4000원 정도 더 싼 삼화 2배고추장은 70% 증가했다. 동서 맥심모카믹스 매출은 30% 이상 감소했고, 대신 값이 1만원 정도 싼 칸타타 아라비카믹스는 50% 이상 상승했다. 화장품도 저가 쏠림 현상이 심했다.

③가전은 반값이 대세

가전제품은 '반값'과 보급형 TV가 시장을 장악했다. 이마트의 경우 프리미엄 가전 매출은 5~15% 감소하고 삼성전자가 내놓은 보급형 TV인 '국민TV'는 전체 판매량의 20% 이상을 차지했다. 이마트가 자체 기획한 '반값TV'도 올 초 1만대가 2주 만에 모두 판매됐고, 최근 출시한 42인치 '반값TV'도 전체 42인치 LED TV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쇼핑몰도 마찬가지. G마켓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 TV 매출은 감소했지만 중소브랜드 제품은 141% 증가했다. 양문형 냉장고가 대표적이다. 양대 가전사 제품은 매출이 10% 증가했지만 중소브랜드 제품은 117% 늘어났다.

이문규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소비자들이 제품의 품질은 거의 비슷하다고 보고 가격이 저렴한 쪽으로 소비를 늘리고 있다"며 "고물가가 지속되는 한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PB(Private Brand)

대형 유통업체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해 만든 브랜드. 유통경로를 단순화해 유명 브랜드 제품보다 가격이 싼 것이 특징이다. 이마트의 '세이브', 롯데마트의 '통큰'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