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점심값 6000원 시대… 구外식당 된 구內식당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다동 한국관광공사 건물 19층 구내식당. 이곳은 관광공사 직원들뿐만 아니라 같은 건물 입주업체 직원, 인근 건물 입주기업의 직원들도 즐겨 이용하는 곳이다. 하루 평균 330명인 이용자의 36%가 외부인으로 최근 고(高)물가로 음식점들의 가격 인상 러시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이후 꾸준히 외부인 비중이 늘어왔다. 한 끼 가격은 4000원으로 올해 직장인 평균 점심값 6007원(잡코리아 조사)보다 2000원 이상 저렴했다.

인근의 파이낸스센터에 입주해 있는 한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김모(여·30)씨는 "파이낸스센터 지하에도 식당들이 많지만 매끼 점심을 해결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사무실 근처 몇군데 다른 회사 구내식당을 정해놓고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찾아가 본 서울 종로구청 구내식당도 구청 직원들뿐 아니라 일반 민원인, 인근 사무실 직장인, 퀵서비스 기사 등 다양한 외부 사람들이 찾아와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먹을 만한 근처 구내식당 정보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꽤 유용한 정보로 통한다. 인터넷에는 주요 사무실 밀집 지역의 구내식당 정보를 모아놓은 블로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한진해운과 우리투자증권, 알리안츠생명 등의 구내식당이 외부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 끼 4500원(아침식사 2500원)인 우리투자증권 구내식당의 경우 점심시간 이용자 550명 중 120명이 외부인(22%)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남부터미널과 서초구청, 강남경찰서 구내식당이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구로 디지털단지에는 웬만한 빌딩 지하마다 구내식당이 있어서 점심시간마다 건물을 돌아다니며 골라 먹는 '순례객'들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메트로는 정책적으로 선릉·을지로3가·노원 등 11개 역의 구내식당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이처럼 구내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CJ프레시웨이는 아예 오픈형 구내식당 형태로 운영되는 카페테리아 '오렌지 스푼'을 구로 가산디지털단지와 보라매병원 등에 열기도 했다. CJ프레시웨이 박수흔 과장은 "한 끼 가격을 평균 4000~4500원으로 유지하고 있고 메뉴를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어 자체 구내식당이 없는 인근 기업체 직원들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모든 구내식당을 외부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민간 기업은 구내식당에 복리후생비를 지원하고 있어 외부인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단체 급식업체인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외부인에게 식사를 제공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입주업체의 결정사항"이라며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이용객의 숫자가 늘어 수익 면에서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구내식당을 외부에 오픈하는 기업이나 관공서 주변에 있는 식당 업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외부인의 구내식당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부에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식당을 시민이 이용하지 못하느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지만 주변 280여개의 식당 업주들의 반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조치"라고 말했다.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건물 지하 옛 삼성플라자 자리에 들어선 삼성 구내식당도 외부인의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푸드코트와 함께 커피전문점과 빵집 등이 들어와 있지만 삼성 사원증이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인근 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곳 식당가를 자주 이용했는데, 요즘은 커피 한 잔도 마실 수 없어 불편하다"고 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에버랜드 측은 "우리도 외부에 개방하면 좋겠지만 주변 상인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삼성전자가 서초동으로 이전한 후 주변 상권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서 방침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