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좀 나눌까요? 고객에 말건네는 포장(패키지 디자인) 마케팅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패키지(package·포장) 디자인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패키지 디자인은 직역하면 포장 디자인이다. 즉, 제품을 담고 있는 용기의 디자인을 의미한다. 상품의 얼굴인 셈이다.

소비자는 포장 디자인을 보고 브랜드를 인지해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패키지 디자인을 보지 않고 단지 맛으로만 값비싼 에비앙 생수와 할인 마트의 PB(자체 상표) 생수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1915년 병 모양을 바꾼 코카콜라처럼 패키지 디자인이 기업을 상징하기도 한다. 잘록한 허리와 주름치마를 연상케 하는 코카콜라 병은 그 자체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이다.

장수 브랜드일수록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기존 패키지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혼란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박수를 받을만한 변신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국내 살균소독제 시장에서 65%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유한크로락스의 '유한락스'도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유한크로락스는 지난 3월 락스를 따를 때 별도 구멍으로 공기가 빠져나가는 '튐 방지 용기'를 도입했다. 1975년 제품 출시 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패키지 디자인에 변화를 준 것이다. 유한크로락스 박진숙 부장은 "락스를 사용할 때 용액이 튀어 의류 탈색이나 피부에 닿는 소비자의 불편을 개선하려고 처음 변신을 시도했다"며 "용기를 바꾸자 월 판매량이 1만개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샘표는 지난달 모든 간장 제품에 동일한 레이아웃을 적용한 패키지 변신을 단행하면서 간장류 매출이 5% 정도 늘었다. 서연우 마케팅팀 과장은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기호를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애경은 2010년 5월 프리미엄 주방세제 '순샘 버블'을 출시하면서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에게 용기 디자인을 맡겼다.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일 정도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젊은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순샘 버블은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등 5개의 국제 디자인상을 받았고, 최근 1년 동안 매출은 전년 대비 42%, 시장점유율은 65%가 성장했다.

지금은 보편화한 초록색 소주병도 거듭된 변신의 결과물이다. 1924년 처음 출시된 '진로' 소주병은 갈색이었고, 이후엔 투명한 유리병이 나왔다. 그러나 투명한 병에 담긴 소주는 술이 지나치게 독해 보인다는 인상이 있었다. 1990년대 초 '그린소주'가 처음 초록색 병을 선보이며 인기몰이를 했고, 1998년 '참이슬'의 등장으로 초록색 소주병이 대세가 됐다. 미용티슈의 대명사 '크리넥스'는 2009년 직육면체 상자 모양에서 과감히 탈피해 과일 조각을 모티브로 한 삼각형 디자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패키지 디자인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백화점들은 쇼핑백 디자인을 주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쓰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월 영화 '장화 신은 고양이' 캐릭터를 활용한 설맞이 어린이용 쇼핑백을 선보였고,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작품을 쇼핑백에 담았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올해 프랑스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아이작 제노와 손잡고 5년 만에 쇼핑백 디자인을 바꿨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쇼핑백은 단순히 물건을 담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신뢰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패키지 디자인의 변화가 소비자들의 저항으로 실패하거나 무산된 경우도 많다. 펩시콜라는 2011년 기존 캔 용기보다 키가 크고 날씬한 '다이어트 펩시 스키니 캔'을 출시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스키니 캔이 여성 외모에 대한 위험한 고정관념을 주입한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기대했던 성과를 얻는 데 실패했다. 빙그레도 1990년대에 '바나나맛 우유'의 상징인 반 투명색 항아리 모양 용기 디자인을 바꾸려다가 소비자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