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수입하는 한국, 농기계는 미국에 수출

지난 12일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농기계 업체 대동공업의 트랙터 공장. 축구장 두 배 크기의 면적(2만㎡)에, 조립을 앞둔 새까만 트랙터 몸체 수십여 대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줄지어 서 있었다. 벨트가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직원들이 몸체에 바퀴와 부품을 분주하게 달았다. 4m 높이에 달린 기중기가 붉은색 트랙터 차체를 천천히 내려 몸체에 결합시키자, 뼈대뿐이던 트랙터가 비로소 제 모습을 갖췄다. 대부분 과정이 자동화돼 공장은 한적하다 싶을 만큼 조용히 움직였다.

공장 안을 가로질러 가자 모든 조립을 마친 새빨간 트랙터가 노란 비상등을 깜빡인 채 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랙터의 보닛 위에는 '대동'이란 이름 대신 'KIOTI(카이오티)'란 영문 마크가 붙어 있었다. 이 트랙터는 모두 미국으로 수출될 물량이다. 노재억 생산본부장은 "대동이란 한자명을 생소하게 여기는 미국 소비자들을 위한 미국 시장용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대동공업은 국내 농기계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선두 업체다. 작년 매출액은 5000억원. 40%는 해외시장에서 거뒀다. 내수시장은 점점 줄고 있지만, 미국·유럽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2010년보다 매출이 600억 가까이 늘었다. "1993년 일찌감치 미국에 법인을 설립했어요. 2007년엔 중국, 2010년에는 네덜란드에 법인을 세우는 등 유럽 시장을 본격 공략할 예정입니다."

농업인구의 감소로 내수시장이 침체되면서 농기계 업계가 해외시장에서 활로(活路)를 찾고 있다. 농기계 수출액은 2000년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한 이래 매년 성장을 거듭, 지난해 처음으로 6억달러(6억800만달러)를 넘어섰다. 가장 큰 시장은 미국. 작년 수출액 중 34.3%를 미국(2억1000만달러)이 차지했다. 지난달 발효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값싼 미국산 농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역(逆)으로 국내 농기계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역시 미국이다. 농기계는 원래 면세품이기 때문에 한미 FTA로 인한 추가 관세 혜택이 없지만, 올해에도 수출량은 지속적으로 늘고있다.

해외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품목은 트랙터다. 작년 수출량의 절반 이상(53.5%)을 차지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이범석 사무관은 "100마력 이하의 가정용 소형 트랙터가 미국시장의 주력 상품"이라며 "국산 농기계는 가격 대비 기술력이 뛰어나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농기계는 대동공업을 비롯, 동양물산·LS엠트론·국제종합기계 등 4개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대동공업이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고, 나머지 3개 업체가 15~20%씩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농기계 업체는 모두 500여 곳. 대규모 업체들은 벼농사용 트랙터, 이앙기 등 대형 기계를 주로 생산하고, 중소업체들은 밭작물, 원예 등 수요가 적은 특색있는 기계들을 생산해 '소품종 대량생산'과 '다품종 소량생산'이 조화를 맞추고 있다.

농기계 업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국내 농촌인구 감소로 내수시장이 매년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시장 규모는 2010년 1조원 아래로 떨어진 이후 작년에는 8000억원대까지 하락했다. 세계 농기계산업 규모는 1330억달러(약 150조원). 이 시장은 전통 농업강국인 유럽(66%)과 미국(19%)이 양분하고 있다. 국내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정부는 2015년까지 10억달러를 수출해 해외시장 점유율을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농기계 업체들도 해외시장에 뛰어들면서 체질개선을 시작했다. 대동공업은 2010년 미국에서 가장 높은 환경기준인 '티어(Tier) 4'에 만족하는 엔진을 자체 개발, 내년부터 제품에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농업 선진국에서는 농업용 엔진에도 배출허용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각 국가의 특성에 맞는 수출전략형 농기계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다.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한상헌 이사장은 "올 1분기에도 전년보다 30% 이상 수출이 늘어나는 등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동남아에는 농기계 수출뿐 아니라 농사법도 함께 전수하기 때문에, 자동차나 TV 한 대 파는 것 이상의 국가 브랜드 상승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