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성남에서 가장 많이 낸 기부자는… 이 빌딩

지난해 경기 성남시에서 개인과 법인을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경기지부)에 낸 기부자는 누구일까.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앞 연면적 6966㎡(2116평), 지하 2층·지상 5층의 '엑스와이빌딩'이 그 주인공이다.

학원, 식당, 은행 등 8개 업체가 입주한 이 빌딩이 지난해 '엑스와이빌딩'이란 이름으로 공동모금회에 기부한 금액은 2억7285만원. 빌딩 입주 업체들의 임대료에서 나온 기부금으로, 빌딩 전체 임대료의 약 20%다.

빌딩 공동 소유주는 사업가로 알려진 김모(57)씨와 부인 송모(55)씨. 부부는 둘 다 "조용히 기부를 하고 싶다"며 신분을 밝히기를 꺼렸다. 어렵게 이뤄진 통화에서 김씨는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기억 때문에 이런 일(기부)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빌딩'의 기부 스토리는 이렇다.

먼저 영어 학원이 입주해 있는 빌딩 4~5층은 임대료의 절반을 저소득층 학생 61명의 학원비로 내놓는다. 월 1830만원, 연간 2억1960만원이다. 빌딩 주인이 임대료를 공동모금회에 기부하면, 공동모금회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에 학원비를 직접 내주는 방식이다. 월 30만원이 한도다.

그냥 학원비만 주면 효과가 부족하다고 보고, 6개월 단위로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지원을 중단한 뒤 대기하던 학생들에게 혜택을 돌리는 '철저한 성과 보상' 방식도 도입했다. 학생 선발은 동별 주민센터에서 1차적으로 추천 명단을 올리면, 이를 보고 빌딩 주인 김씨가 고용한 사회복지사와 상의해 결정한다. 김씨는 "기부는 꾸준히 하면서 수혜자가 자활 의지를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임대료로 기부하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빌딩이 기부에 나서자 영어 학원도 동참했다. 영어 학원은 매달 주변 저소득층 20명을 자체적으로 뽑아 따로 무료 강의를 듣게 하고 있다. 입주 당시 빌딩 주인 김씨가 "4500만원을 훌쩍 넘기는 두 층 임대료를 4000만원 이하로 깎아줄 테니 대신 학원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쳐 달라"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입주 학원의 송오현 원장은 "임대료 혜택도 받고, 좋은 사회 공헌 활동도 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 나 역시 무엇보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식당, 치과, 은행 등이 입주해 있는 빌딩 1~3층은 임대료의 일부인 월 1000만원을 '행복드림통장' 사업에 기부한다. 행복드림통장 사업은 저소득층 학부모가 자녀 학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 부모 스스로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동일한 금액을 통장에 넣어주는 방식인데, 부모가 애쓴 만큼 지원해준다는 취지다. 자녀가 중학생이면 10만원, 고등학생은 15만원이 한도다. 이 빌딩 1~3층은 작년 8월부터 30개월 동안 매달 1000만원(총 3억원 기부 약정)을 행복드림통장에 전달하기로 성남시와 약속했다. 1층에 입주한 커피숍 손혜원 대표는 "건물주가 매달 임대료 중 얼마가 기부 사업에 쓰이는지를 투명하게 알려준다"면서 "내 임대료가 가난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키워낸다니, 이보다 흐뭇한 일이 어디 있겠나"고 말했다.

'기부하는 빌딩'은 입주 자격도 까다롭다. 지하철역 바로 앞인 데다 인근에 백화점까지 있는 목 좋은 곳이지만, 3층의 방 5개 중 4개(임대료 월 2500만원가량)는 계속 비어 있다.

김씨는 "고객 호주머니만 노리는 게 아니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입주자인지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며 "빌딩 1층에 입주한 식당은 계약 당시 건물주인 내가 위생 상태 검사를 직접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술집, 당구장, PC방 같은 업소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에도 7~8개 업체가 입주를 원했지만 조건 미달로 탈락했다.

김씨는 "조만간 경기 평택에 '기부하는 공장'도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