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 로커 장사익, 재즈 장사익, 소울 장사익…

"넘(남) 부끄럽고, 내세울 것도 없잖어유. 아무데도 얘기 안했어유. 신세 진 사람한테만 알음알음 건네주고… 허허허." 최근 3년 4개월 만에 새 앨범인 7집 '역(驛)'을 발표한 소리꾼 장사익(63). 17일 서울 세검정 자택에서 만난 그는 '부끄럽다'는 말부터 꺼냈다.

앨범 제목이자 첫 곡인 '역'은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김승기 시인의 동명 작품에 선율을 얹은 곡.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세상은 다시 모두 역일 뿐이다'라는 싯귀를 우연히 접한 장사익이 생면부지의 시인에게 '감히 선생님의 시로 노래를 만들려고 하는디…'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보내 흔쾌히 동의를 얻어 2년 전부터 공연에서 불러온 곡이다.

"내가 시인 뵈러 병원이 있는 경북 영주까지 갔는데, 어르신들이 쭉 앉아있는 게 시골 간이역 같은 거여유. 우리네 인생살이도 역전 같잖어유. 서성대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들, 정착하는 사람들…"

한국 정서를 고스란히 살려낸 가락으로 소리판을 펼쳐오며 '국민 소리꾼'으로 사랑받아온 장사익. 하지만 음반은 1995년 1집 이후 2~4년 간격으로 느릿느릿 만들어왔다.

"게을러서 그러쥬. 행동도 느려지고, 힘도 딸리고…" 하지만 '넘 부끄럽다'는 이 앨범에서 장사익의 음악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다채롭고 새롭고 힘차다. 시인 허수경의 작품에 멜로디를 붙인 '기차는 간다'에서는 그는 '로커'로 변신한다. 신시사이저와 베이스·드럼을 동원해 1970년대 캠퍼스 밴드들이 만들었던 풋풋한 록 사운드를 되살린 복고풍 반주는 장사익의 감칠맛 나는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사람들이 '네 노래는 맨날 무겁고 껌껌하다'고 그러잖여. 그래서 락(rock)적으로 샤우팅도 해봤지. 어때 들을 만해유?"

손시향의 트로트 고전 '이별의 종착역'에선 양주에 막걸리를 살짝 얹은 듯한 '블루스 보컬리스트'로 탈바꿈했다. 더러는 소몰이 창법까지 살짝 구사하며 '워워워우우' '뚜빠 둡둡' 하며 능숙하게 밀고 당기는 후반 여음구는 흑인 가수들 못지않게 끈적하고 찰진 데다 구성지기까지 하다. "돌아가신 김현식씨도 이 노랠 리메이크했는데 한 번 비교해보셔. 김현식씨가 한국적인 블루스였다면 우린 진짜 흑인 느낌 나게 '익사이팅(exciting)'하게 불러봤어유."

해금 반주를 곁들여 애달프게 짜낸 '산너머 저쪽'은 앨범에서 가장 '된장 맛'이 진한 편이지만, 알고 보니 독일 시인 카를 부세(1872~1918)의 시로 만들었다.

"문선대에서 군복무하며 지방 공연을 할 때 한 여학생이 써준 편지에 담긴 시를 보고 일찌감치 악상을 떠올렸는데, 40년 만에 처음 발표하게 됐다"며 사춘기 소년처럼 웃었다. 환갑 뒤 나온 첫 앨범에서 유난히 젊고 역동적 모습을 보인 장사익은 "사람들이 헤어지고 만나듯 음악도 인연들이 있는 거예유. 내가 재즈도 하고 블루스도 하고 록도 하는 것도 인연인가 봐유. 참 재밌지 않어유, 인연이란 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