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건축 전시] 90년 된 의자에 앉아 차 한잔… 사랑채서 낮잠을

집 안에 있기 아까운 봄날의 연속. 겨우내 방전된 감수성이 따사로운 햇살에 다시 충만해지는 이때, 봄바람을 벗 삼아 예술 안목을 높여 보는 건 어떨까.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디자인·건축 전시가 한아름이다. 주말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시도 많으니 가족 나들이 코스로 활용해도 좋다.

◇삼청동 나들이하며 빈티지 가구 즐기기

숨 막힐 것 같이 속도전을 펼치는 디지털 문화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 걸까, 몇 해 전부터 '빈티지(vintage·오래되고 낡은 것)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잡동사니로 바라봤을 법한, 뽀얗게 먼지 쌓이고 너덜너덜해진 가구가 '시간의 흔적을 지닌' 디자인 작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 빈티지 디자인이 미술관으로 들어왔다. 서울 삼청동 초입의 금호미술관에서 5월 6일까지 열리는 디자인 전시 '디자인, 컬렉션, 플리마켓(Design, Collection, Flea Market)'. 국내 유명 빈티지 가구 컬렉터 12명이 소장한 작품이 미술관 전체를 가득 채운다. 김명한 aA 디자인 뮤지엄 대표는 1950~60년대 영국의 서민 가정집에서 사용하던 장과 서랍을, 일러스트 작가 '사보'는 바우하우스 부엌 장, 덴마크의 빈티지 선반 등을 선보인다. 디자이너 마영범씨는 1960년대 뱅&올룹슨 오디오 등 1930~70년대의 진귀한 빈티지 오디오를 내놓았다. 참여 컬렉터인 구자영 '카페 톨릭스' 대표가 1920~30년대 프랑스에서 생산된 톨릭스 의자와 소품으로 꾸민 1층 전시실에선 낡은 소파에 직접 앉아 차를 마셔볼 수도 있다.

빈티지 마니아라면 전시 기간 내 주말마다 열리는 '플리마켓 인 뮤지엄(Flea Market in Museum)'을 놓치지 말 것. 컬렉터들이 소장한 빈티지 조명과 소품을 3만~10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기회. 관람료 일반 3000원·학생(대학생 포함) 2000원. (02)720-5114, www.kumhomuseum.com

◇한옥에서 달콤한 낮잠을

나른한 봄날 오후, 한옥에서 한숨 자고 가구 디자인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것도 현직 대통령이 살던 한옥에서. 가구 디자이너 이정섭 목수가 운영하는 내촌목공소가 스위스 오가닉 목제 침대 브랜드 휘슬러네스트와 함께 서울 북촌의 한옥 부티크 호텔 '취운정'에서 전시 '봄 한옥에서의 오수(午睡)'를 연다. 취운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시절 살았던 한옥이다.

한옥 사랑채에 나지막이 깔린 목제 침대에 누워 1시간 30분 정도 잠자며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정섭 목수가 손으로 직접 만든 탁자와 의자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5월 14일까지 월~금요일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 열린다. 체험료 무료.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010-8593-4231, noeul2@thenaechon.com

◇건축가의 드로잉

건축가의 주된 작업 대상은 건축물이지만 그들의 일상 작업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스케치와 드로잉. 건축가들이 건축물 설계를 위한 과정이 아닌, 정색하고 그린 '진짜 그림'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린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 '갤러리 MOA'에서 다음 달 9일까지 열릴 건축가들의 드로잉 전시 '기하학 너머(Beyond Geometry)'. 김미상·김인철·문훈·피터 팔만 등 국내외 건축가 14명이 참여해 다양한 스타일과 성향의 드로잉 작품을 선보인다. '기하학'은 네모, 격자 등 작업을 위한 건축가의 제한된 스케치를 상징한다. 이 기하학 뒤에 꼭꼭 숨겨놓았던 건축가들의 예술적인 끼를 엿볼 수 있는 기회. 건축가 김인철이 먹으로 그린 작품 '우연(偶然)', 문훈이 펜과 연필로 작업한 그림 '새로운 정자' 등이 출품됐다. 입장료 1000원. (031)949-3272, www.heyrimoa.com

◇봄, 빛을 즐기다.

서울 삼성동 리빙갤러리 '옴니'에선 조명 전시 '조명에 대해 이야기 좀 합시다(Talk About Lighting·토크 어바웃 라이팅)' 전이 열린다. 가구와 함께 최근 리빙 디자인 아이템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조명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 관람객에게 '조명은 꼭 밝기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세계적인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의 조명, 빈티지 조명기구를 현대의 기술로 재해석한 아르코 조명 등 80여점이 전시된다. (02)538-8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