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VIEW] 기름값, 삼성이 들어가면 떨어질까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토탈이 정유업 즉 석유정제업에 본격 진출했다. 삼성토탈은 6월부터 전국의 100여곳의 알뜰주유소에 매월 10만배럴 안팎의 휘발유를 공급하게 된다. 이로써 36년간 유지돼 왔던 정유 4사(社)의 독과점체제가 무너지게 됐다.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 등 정부 5개 부처는 19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가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삼성토탈의 참여로 정유시장이 5사 체제로 바뀌게 되면 경쟁 때문에 유가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한 주유소에서 여러 정유사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하고 ▲알뜰주유소에 대해 2년간 지방세 50%를 감면해주고 ▲석유 수입업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발표했다. 반면 기름값의 45~48%를 차지하는 유류세 인하는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삼성토탈이 정유업계에 본격 진출했지만 소비자들이 실제로 체감할 정도의 휘발유 가격 인하가 이뤄질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정부 스스로도 이날 삼성의 참여를 포함해서 세제 혜택, 알뜰주유소 확대 등으로 인한 휘발유 가격의 인하 폭은 L당 30~40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휘발유 가격의 2%가 채 안되는 수준이다. 대표적인 중형승용차인 쏘나타의 최대 주유량인 70L를 채워봐야 2100~2800원 저렴해질 뿐이다. 삼성의 진출만 이뤄진 채 체감효과는 크지 않다는 뜻이다.

삼성의 참여로 국내 정유시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30여년간 이어져 온 4사 독과점 체제가 깨지게 됐다. 그것도 제5사업자가 자발적으로 뛰어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삼성을 끌어들인 모양새였다. 4사 과점 체제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 정부가 메스를 댄 것이다.

정부 유가TF(태스크포스)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4개 정유사별 시장 점유율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며 "경쟁이 치열했다면 시장 판도가 그 정도로 고착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구도가 사라진 상황에서 전국 주유소의 90%가 정유사 한 곳과만 거래해야 하는데 가격이 어떻게 내려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기름값이 묘하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다시 "제도 개선을 통한 방안을 찾아보라"고 한 것도 정유시장의 가격구조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강하고 깊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유력한 대권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까지 19일 "기름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며 거들고 나섰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 의지가 강력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날 주요 정유사의 주가는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전문가도 "삼성을 참여시킨 것은 시장 여건 조성에 관한 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한 셈"이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삼성이 참여한다 해도 가격이 크게 내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형건 대구대 교수(경제학과)는 "원유가와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데 그 나머지에서 정유사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은 100원 안팎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삼성이 저렴한 가격에 휘발유를 공급하더라도 다른 정유사들이 따라갈 여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이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하는 것도 6월부터이고 그나마 공급량도 크지 않아 당장 가격인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삼성토탈의 한 달 생산능력은 최대 20만 배럴 정도인데 이를 전량 공급한다고 해도 국내 시장 하루 소비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정부는 주유소가 정유사 한 곳과만 거래하도록 하고 있는 계약 관행도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명 '노예계약'으로 불리는 전량구매계약 강요행위를 위법행위로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유소들이 '갑'인 정유사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어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알뜰주유소 사업주에게 주는 세제혜택을 지금보다 더 늘리겠다고 했지만, 기존 정유사의 브랜드 파워가 여전해 이를 포기하고 알뜰주유소 간판을 달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주유소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결론적으로 정부가 내놓은 대책으로는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의 가격인하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토탈은

삼성종합화학과 세계 6대 석유회사인 프랑스 토탈(Total)이 50 대 50으로 지분을 갖고 있다. 대표이사는 삼성측이, 부사장은 토탈측이 맡고 있어 경영권은 사실상 삼성 몫인 셈. 자본금 958억원, 매출 6조8000억원(2011년)으로 나프타를 원료로 합성수지, 화학섬유원료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휘발유가 나온다. 2010년 석유정제업 등록을 했고, 이것이 정유업계 진출의 발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