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차라리 영화였으면… '다큐'라서 더 불편한 전쟁의 실상

"죽어도 싸잖아." "맞아. 나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

살인마들의 대화 같은가? 덴마크 출신 야누스 메츠 감독의 '아르마딜로' 중 아프가니스탄(아프간)으로 파병된 덴마크 병사 두 명이 나누는 대화다. 교전 중 동료 두 명이 부상하자 화가 난 이들이 배수로에 숨어 있던 탈레반 병사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한 뒤 사체를 뒤지면서 주고받는 얘기다. 전쟁영화에서 흔히 접한, 익숙한 장면과 대사 같은가? '아르마딜로'는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아르마딜로'는 메츠 감독과 카메라 감독 라스 스크리가 아프간 최전방기지 '아르마딜로'에서 6개월간 담아낸 '실제 전쟁'이다. 아프간으로 처음 파병된 매드·다니엘·라스무스·김 등 20대 초반의 병사 네 명이 고국 덴마크를 떠나 전장에 갔다가 귀국하는 과정 위주로 촬영했다.

카메라는 병사들의 일상과 정찰 과정은 물론 교전 장면을 충실히 담았다. 기존 다큐와 달리 인터뷰는 거의 없다. 병사들의 헬멧에 초경량 카메라를 부착해 찍은 교전 장면이나 총과 수류탄에 맞은 아프간 병사의 시체까지 보여주는 장면은 오히려 극영화의 일부라고 느껴질 정도로 세밀하다. 고국에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이 있고, 밤에는 막사에서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며 킬킬거리던 평범한 청년들이 전쟁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폭력과 살인, 분노를 정당화하는 과정은 충격적이다. 총알이 팔에 박히는 공포를 겪고도 다시 아프간에 돌아가려는 병사들을 보면, 이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당성은 중독 같기도 하고, 맹목적인 신앙 같기도 하다.

병사들도 관객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이곳에 와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아르마딜로'를 보고 병사들의 비인간성과 만행을 비난하긴 쉽다. 그러나 애초에 그들이 왜 거기 가게 됐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게 이분법적으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서 고민스러울 것이다.

2010년 덴마크에서 역대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했고, 덴마크 정치계와 사회에 파병문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비평가주간 대상을 받았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여자애 죽는 건 별일 아니죠. 단지 눈앞에서 벌어질 뿐. 우리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잖아요."(아르마딜로 부대의 한 병사가 하는 말)

#장면
파병 병사 매드가 교전 중 팔에 총알을 맞고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극영화의 배우에겐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의 공포와 충격.

#해외평
'실험적이고도 완성도 높은 놀라운 작품.'(뉴욕타임스)

#이런 분 보세요
전쟁을 게임이나 극영화로 접하면서 '재밌다'고 생각한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