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지리멸렬', 욕망은 망설일 때 아름답다

물론 그런 작가의 미학적 의도가 충분히 효과를 거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그 '지리멸렬함'으로 독자들이 새로운 인식 지평을 얻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망설임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심사위원이 반을 넘었다.

또 약육강식의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개인의 무분별한 욕망의 분출이라고 할 때, '존재인 척…'이 피난처로서 '동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해석이 지지를 얻었다. 타자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현대인의 욕망이 분출하는 속에서, 그 욕망을 망설이게 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긍정적 평가였다.

 

극적 반전과 드라마틱한 전개, 그리고 엄청난 비밀 공개만이 서사의 능사(能事)일까.

소설 문법의 일반적 관행을 전략적으로 비켜 가면서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박금산(40)의 장편 '존재인 척, 아닌 척'(뿔)이 '2012 동인문학상' 4월 독회의 주인공이 됐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유종호·김화영·오정희·정과리·신경숙·김동식·김대산)는 최근 5차 심사 독회를 갖고 이 작품을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으로 올렸다.

'존재인 척, 아닌 척'은 제목이 상징하듯, 완성된 존재를 선망하지만 마지막 순간 다시 무너지고 부서지는 존재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중심축은 연애. 이혼한 사내와 기차 여승무원이 바다에서 만나 벌이는 로맨스다. 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로맨틱한 사랑을 기대할 수밖에. 하지만 작가는 그런 기대를 경쾌하게 배반한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드라마틱하지도 않으며, 대단한 비밀이 마지막에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한 심사위원은 이를 "참으로 지리멸렬하는 글쓰기를 참으로 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요약했다. 여기서 '지리멸렬'이란 단어는 물론 칭찬이다. 그는 "충분히 의미나 감정을 적극적으로 부여할 수 있음에도 의식적으로 한 움큼씩 덜어내고 있다"면서 "미학적으로 계산된, 가벼운 수준의 낯설게 하기"라고 명명했다. 우리 삶이 현실이 그렇게 극적일 수 있느냐는 반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