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용(兵馬俑)에 놀랐나, 그건 진시황릉 한 귀퉁이에 불과

제국의 빛과 그늘

장점민 지음｜김영수 편역｜역사의 아침｜572쪽｜3만원

문화혁명 직전인 1960년대 초, 곽말약(郭沫若) 중국사회과학원 원장이 주은래 총리를 찾았다. 당나라 고종과 측천무후 무덤인 건릉(乾陵)을 발굴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열을 올리며 발굴의 필요성을 설명하던 곽말약에게 주은래는 "10년 안에는 제왕릉을 발굴하지 않겠다"며 잘랐다. 당시 중국의 발굴 인력과 기술·장비 수준이 건릉 같은 대규모 제왕릉을 발굴하기엔 멀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건릉은 섣부른 발굴로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다. 올 초에도 건릉을 발굴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향후 50년 안에는 발굴계획이 없다"는 중국 당국자의 반박이 뒤따랐다.

저자 장점민(張占民·58) 섬서(陝西)성 고고연구소 연구원은 진시황릉과 병마용갱(兵馬俑坑)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발굴기는 이미 국내에 소개됐지만, 이 책은 발굴 당사자가 직접 쓴 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뢰도가 훨씬 높다.

진시황릉 봉분은 높이 55m에 남북 515m, 동서 485m로 서울 여의도공원보다 큰 봉분(25만㎡)은 작은 산 크기다. 내성과 외성으로 둘러싸인 능원(陵園)까지 치면, 여의도 공원 10배보다 약간 작은 211만㎡이다. 진시황릉 봉분은 건릉처럼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고도(古都) 서안(西安)을 찾는 이들이 들르는 병마용갱은 진시황릉 무덤이 아니라 진시황릉 능원 서쪽 1.5㎞에 있는 수많은 배장갱(陪葬坑) 중 하나일 뿐이다. 배장갱은 무덤에 딸려 묻은 구덩이란 뜻인데 진시황릉 주변에는 병마용뿐 아니라 마차, 말, 진귀한 동물을 묻은 배장갱이 200개가 넘는다. 현재까지 극히 일부밖에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

진시황릉의 구체적 실태를 전하는 것은 '사기'(史記)다. '수은으로 하천과 바다를 만들어 기계로 쉬지 않고 흐르게 했다. 천장에는 천문도, 바닥에는 지도를 그렸다.' 1980년대 초 봉분의 흙을 채취해 실험했더니, 다량의 수은이 검출돼 '사기' 기록의 신빙성을 높였다. 저자는 진시황릉 천장에는 천체를 상징하는 28개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바닥에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표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자연계의 우주를 본떠 지하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시황릉 봉분과 서쪽 내성 담장 사이의 배장갱에선 동(銅)마차 2대가 나왔다. 1호 동마차는 행렬을 이끄는 선도차로 장거리 사격 무기인 쇠뇌와 화살 54대, 방패까지 갖췄다. 2호 동마차는 탑승자를 편안히 모실 수 있도록 깔개와 창문, 지붕을 갖췄다. 동으로 만들어진 이 마차는 고대 중국의 수레 제조 기술과 수레 운행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능원 북쪽에선 돼지, 양, 개는 물론 학, 닭, 자라, 오소리 같은 동물을 묻은 배장갱이 나왔다. 병마용과 제작기법이 같은 도용(陶俑)도 여럿 나왔다. 10여종의 날짐승과 길짐승, 물고기와 자라가 한 구덩이에서 나온 것은 진시황 능원은 물론 이전의 무덤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동물갱이 왜 진시황 능원 주변에서 나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1998년엔 돌로 만든 갑옷과 투구가 묻힌 배장갱이 발견됐다. 동서 128m, 남북100m나 되는 대형 구덩이다. 이듬해 이 구덩이 남쪽 35m에서 다양한 포즈의 도용이 발견됐다. 이른바 '백희용갱(百戱俑坑)'.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거나, 오른쪽 무릎을 구부린 채 오른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복원을 마친 6개의 도용은 모두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다. 상당히 개방적인 당나라 때도 찾아볼 수 없는 짧은 치마다. 2000년에는 청동으로 만든 실물 크기 오리와 학이 묻힌 배장갱도 발견됐다. 진시황릉은 여전히 지상 최대의 발굴작업이 진행 중인 유적이다.

이 책은 장점민이 쓴 저서 6권을 편역했다.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발굴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개발 열풍에도 섣불리 발굴을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태도가 더욱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