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고 힘들다는 암벽등반을 왜 취미로 하는 걸까? 그것도 50대의 여성이. 그 집 남편은 주말이면 험한 바위 앞으로 달려나가는 아내를 말리지 않나? 자녀들은 이런 엄마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나이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당차게 사는 사람들을 수소문하다 이영옥(52)씨를 소개받았다.
이영옥씨가 바위 타기를 즐기는 이유는 그 안에 완전한 자기 몰입이 있어서다.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한 땀 한 땀 조심스럽게 바위 꼭대기를 향해 온몸을 비틀어 움직이는 동안, 이씨는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 된다. 이씨는 “나를 중도에 힘들게 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저 꼭대기에 올려놓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한시도 떠나지 않는 게 이 취미의 가장 큰 매력”이란다.
“때때로 이게 어쩌면 생존의 끝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러면 더욱더 몰입이 깊어져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평소 내 기억과 사고를 가로막았던 안개 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내 자신이 화창하게 보이죠. 그 상태와 정도는 상상으로는 어림잡지 못합니다. 이 운동을 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뿐이죠.”
▲ 내일은 오늘보다 더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져 조금 서글퍼진다고 말했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각은 ‘괜찮다’였다.
이씨는 암벽등반을 통해 할 수 있는 동반자와 영혼이 한데 묶이는 경험도 신비하단다. 한 줄 로프에 각자의 몸뚱이를 지탱하고 같은 운명에 놓인 현실이 동반자들을 일심동체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운동을 함께 하면 깊고 진한 우정을 맺게 된다고 한다. 이씨는 다만 나이가 들면서 오늘이 어제만 못하다는 걸, 또 내일은 오늘보다 더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 조금 서글퍼진다고 말했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각은 ‘괜찮다’였다. 캠퍼스(중앙대 약학과) 커플로 30년 넘게 그를 곁에서 지켜본 남편(55·약사)은 이씨의 취미활동에 대해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씨가 자신의 기량을 잘 알고 또 거기에 걸맞은 난이도를 택해 큰 사고 없이 이 운동을 즐기고 있어서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평소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주변을 정리하는 성향으로 미뤄봐 암벽등반도 그렇게 하리라고 믿고 있다.
▲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코오롱교육센터 실내암벽등반장에서 실전 못지않은 트레이닝에 몰두하고 있는 이영옥씨. 이씨는 주로 주말에 실행하는 암벽등반에 대비해 주중 한 차례씩 실내암벽등반장을 찾아 기량을 연마하고 있다.
이씨는 이 운동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기본기를 착실하게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착실히 단계를 밟으면서 자기 능력에 맞는 코스를 택해 진지하게 임해야 합니다.” 이씨는 이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본인 자신이 그렇게 해서 아직 큰 부상 없이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산악부에서 기초를 익힌 이씨는 결혼 후 자녀들 키우느라 20년가량 중단했다가 7년 전에 다시 시작할 당시, 코오롱등산학교 등 여러 등반교실을 거치며 장비 사용법과 비상시 탈출 요령 등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고 한다. 이씨는 그런데도 이따금 힘이 달리는 걸 느끼고, 최근에는 손가락 끝 마디가 휘고 두툼해지는 증상이 두드러져 손마디 관리에 부쩍 신경 쓰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신혼 초기에는 약사로 직장생활을 했으나 자녀교육에 치중하느라 직장인으로의 약사활동은 일단 접어둔 상태다. 주중에는 최소 1회 이상 실내암벽등반장을 찾아 트레이닝을 하는 이씨는 각종 사회단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으며 주말트레킹학교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