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내렸는데도… 美와인, 한국 오면 값 3배

지난달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발효로 미국산 와인 가격이 내렸지만, 미국 현지와의 가격 차이는 여전히 컸다. 본지가 최근 미국 LA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월마트(Walmart)·타깃(Target)·본스(Vons) 등 대형 할인점과 수퍼마켓 체인에서 주요 미국산 와인 가격을 조사한 결과, 국내 판매 가격이 현지의 3배 정도로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 FTA 발효로 수입 와인에 붙던 관세 15%가 없어지면서 국내 주요 와인 수입사들이 3월부터 미국산 와인 가격을 10% 정도 내렸다. 프리미엄 미국 와인으로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로버트 몬다비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은 FTA 효과로 7만8000원이던 백화점 판매 가격이 6만9000원으로 내렸다. 대형마트에서는 추가 할인 행사로 6만2400원 정도에 살 수 있다. 그러나 미국 LA 인근 대형마트에서는 똑같은 와인에 18.55달러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8%의 판매세(sales tax)를 더해도 2만2800원으로 국내 백화점 가격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로버트 몬다비를 수입하는 신동와인 관계자는 "미국 내 정상 가격은 21~23달러 정도인데, 캘리포니아 지역이 와인 주산지라 특히 저렴한 것 같다"며 "수입 환경이 비슷한 중국이나 일본도 6~7만원 정도로 국내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도 국내 정상 판매가는 5만2000원이지만 미국 대형마트에서는 정상 가격이 13.99~15.49달러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3만3000~3만8000원 정도인 '미라수' '아포틱' 등도 미국 현지 가격은 9달러를 넘지 않았다.

와인업계는 국내 와인 가격이 비싼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국내 와인 시장이 작기 때문에 와인 생산자(와이너리)의 공급 가격 자체가 미국 현지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이다. 국내 와인 수입업체 관계자는 "취급 물량이 적으니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수입사들은 미국 업체보다 30% 정도 비싸게 와인을 들여온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둘째로 국내 와인 수입사나 유통업체들이 적은 물량으로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박리다매' 대신 '고가 전략'을 쓰는 것이다. 일단 마진을 높게 붙인 뒤 할인 행사를 해 판매가를 낮추는 것이 업계 관행으로 굳어졌다. 마지막으로 FTA로 관세 15%가 사라져도 주세(수입 원가의 30%), 교육세(주세의 10%), 부가세(수입원가+주세+교육세의 10%) 등의 세금이 와인 판매 가격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 규모와 세금 등 구조적인 이유를 감안해도 소비자 판매 가격이 현지의 3배나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유통 전문가들의 평가다. 수입사·도매상·소매상들이 유통 단계에서 과도한 마진을 챙긴 탓에 국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입 원가에 세금과 보관·운송비 등을 모두 더한 가격의 200%가 넘는 유통 마진이 소비자가격을 올리는 '주범'이라는 이야기다.

미국의 와인 생산업체도 한국 내 판매 가격이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인정했다. 미국 나파밸리와 소노마카운티에서 대규모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업체 고위 관계자는 "(세금 등을 감안하면) 한국 시장은 구조적으로 미국 현지보다 최소 35% 이상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9달러 남짓한 와인이 한국에서는 30달러가 넘는다'고 하자 "17~18달러가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세금 등 각종 비용을 감안해도 한국에서 너무 비싸게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와인 가격을 낮춰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전체 시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와인 업계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