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긴축 역풍… 그리스, 유적 발견하고도 "그냥 덮자"

유럽 각국이 긴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면서 '소비침체→경기 침체→성장률 하락'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시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면서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 정권교체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에 이어 최근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 병원 폐업으로 수술 7개월 대기

스페인 북동부 지역 카탈루냐에 사는 테레사 토사스(66)씨는 지난해 여름 사고로 무릎을 다쳐 수술을 해야 했다. 그런데 병원을 찾은 토사스씨는 의사로부터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스페인 병원은 대부분 지방정부가 운영하는데, 공공부채에 허덕이는 카탈루냐 지방정부는 지난해 의료 예산을 9000억유로(약 1조3000억원)나 삭감했다. 이 때문에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부족해지면서 대기 환자가 급증한 것이다.

7개월을 기다린 끝에 토사스씨는 최근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장소는 병원이 아니라, 현재 운영 중인 극장(劇場)의 빈 사무실이었다. 언제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자, 토사스씨는 건강보험 혜택을 포기하고, 개인 돈을 들여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담당 의사는 병원 대신 이곳에 의료 장비를 차려놓고 수술을 했다. 월급이 줄어든 의사들이 업무 외 시간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즈는"70개의 카탈루냐 병원 중 지방정부가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8곳에 불과하다"며 "현재 스페인에는 공공 의료와 (불법인) 민간 의료의 이중(二重) 의료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경찰관 돈 받고 임대, 이탈리아 훼손 문화재 방치

그리스 경찰은 예산 삭감으로 경찰관 인원과 임금이 줄자 지금까지 무료로 제공해 왔던 일부 치안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기업이나 개인이 고액 현금과 미술품, 위험물 등의 수송 경비를 의뢰하면 사설 경비업체처럼 돈을 받고 경찰관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요금은 시간당 경찰관 1명은 30유로(약 4만5000원)이며, 경찰차 1대가 투입되면 시간당 스페인은 지난해 말 공립학교에 화장실 휴지 사용을 줄이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한 달 동안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휴지를 1인당 25m로 제한하라는 내용이었다. 교육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황에서 마른 수건을 한 번 더 짜겠다는 조치이다. 최근 스페인에서는 과학 실험 등 일부 교과목 수업이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스페인 전국학생연합의 토힐 델가도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다 보니, 직장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청년 실업률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페인의 청년(16~24세) 실업률은 50.4%에 이른다.

40유로(약 6만원)의 요금을 받는다. 그리스 경찰 대변인은 "예산 삭감으로 치안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민간 지원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콜로세움 복원 사업을 보류했다. 관련 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하면서 민간 투자를 받아 붕괴 위험에 직면한 콜로세움을 복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가 투자를 미루면서 복원 일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나폴리 인근 고대 유적인 폼페이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유적지 일부가 무너져내리고 있는데도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훼손 문화재를 방치해 두고 있다.

세계 4위의 관광 대국인 이탈리아에 고대 유적은 기간(基幹) 산업에 속하지만, 정부가 문화재 유지·보존하는 데 쓸 돈이 없어 외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는 "현재 EU(유럽연합) 등 외부에서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에서도 지하철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을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보존할 수 없게 되자, 다시 매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