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건어물, 깔끔하게 포장했더니 외국 손님 10배로"

1980년대 서울 중구 오장동 중부시장은 시어머니 심부름을 나온 '새댁'들로 북적였다. 한손에는 고등어 묶음, 다른 한손으로는 굴비 두름을 든 며느리들이 북적였다. 하지만 백화점과 대형마트 공세에 중부시장도 속수무책, 어느덧 나이 지긋한 고객들만 남았다. 그런 중부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오후 중부시장 미역·다시마 전문점 다다유통에 젊은이 네 명이 들어섰다. 홍콩에서 온 관광객들. 다양하게 진열된 다시마를 찬찬히 보다가 길쭉한 원통형 포장 미역에 눈을 돌렸다. "얼마예요?" 처리 웡(30)씨가 어색한 한국어로 묻자 최선옥(52)씨가 반갑게 "만원이요"라고 답했다.

지금 중부시장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젊은이들 외면으로 고민하다, 한국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찾아온 중국·일본 관광객에게 눈을 돌렸다. 물건을 덜렁 그냥 주거나 기껏해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던 가게들이 외국인들은 포장하는 걸 좋아한단 얘길 듣고 곱게 포장지에 싸서 정성스레 넘긴다. 다다유통 포장지에는 라면 겉봉처럼 조리법과 유의사항 등 정보가 적혀 있다. 주경식(58) 대표는 "맨 상품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맞춤형 포장을 하다 보니 지난 3년간 외국인 손님이 10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02)2263-6363

형제상회 사장 이장환(52)씨는 김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점포를 자주 찾자,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웠다. 이제는 동네 상인에게 1주일에 세 번 간단한 일본어 강의까지 한다. 전남 신안 임자도에서 바로 공수한 김으로 아삭아삭 단맛이 일품인 돌김과 입에서 살살 녹는 재래 김을 만들어 판다. 김치 김, 와사비 김 등 온갖 '브랜드' 김을 손님 구미에 맞게 30가지 종류로 포장해 판다. (02)2275-7464

미락푸드마켓에서는 오징어포, 쥐포 등 각종 포와 땅콩·호두 등 견과류가 일품이다. 30대 사장답게 온라인 쇼핑몰에도 진출, 온라인 매출이 전체의 80%에 달한다. 그는 "이제는 재래시장이 고객을 찾아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02)2272-6272

조기는 성신상회가 유명하다. 2~4월 잡은 참조기와 남태평양 원양 조기를 주로 한다. 조기를 저장할 때 천연소금을 사용해 맛이 깊다고. (02)2265-9935

오징어채로 유명한 삼육상회는 제주도 출신 사장이 고향에서 수확한 감귤까지 계절상품으로 취급한다. 상큼한 맛이 압권이라고. (02)2275-1178

중부시장은 현재 '건어물 시장' 명성에 어울리는 '호프광장'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0여종에 달하는 '마른안주'를 입맛대로 고른 뒤 오순도순 모여 앉아 맥주를 즐기도록 한다는 것. 김정안(61) 상인 회장은 "호프광장이 시장을 '즐기는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