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무용 외길, 덩야핑 꺾은 유순복(1991년 남북단일탁구팀 北 선수)을 연기하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쳐다보는 북한의 유순복 선수. 불안감 때문에 입술을 질끈 깨물다가도 경기가 시작되면 매서운 눈빛으로 탁구공을 쏘아본다. 남·북 단일팀이 결승전에서 질 위기에 놓인 순간, 유 선수가 중국 선수를 물리치면서 단일팀은 승기(勝氣)를 잡는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코리아'는 남북 탁구 단일팀의 우승 실화를 진부한 표현과 뻔한 캐릭터로 채운 영화다. 그럼에도 유순복 선수가 등장하는 장면은 배우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 때문에 '진짜 북한 사람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일 유 선수 역할을 맡은 신인배우 한예리(28)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서 10대 소년 같던 한예리는 곱게 화장을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유순복 선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어떻게 연기했나.

"당시 경기장면을 보고 놀랐다. 20세에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나가 당시 세계 최고이던 중국의 덩야핑 선수를 이겼다. 탁구는 정교하고 섬세한 운동인데도 파워풀하게 경기를 펼치더라. 156㎝ 단신의 거인 같달까. '그가 나중에 보더라도 실망하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유 선수가 느꼈을 긴장감이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더라.

"유 선수의 이름 그대로, 순하고 복스럽게 연기하려고 했다. 정말 신기한 건, 결승전 때 중국선수를 이기는 장면에서는 진짜 관중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 텅 빈 경기장이었는데…. 몸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눈물이 저절로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