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밝은 큰손들, 저평가 유럽은행 채권 노려

자산가 이모(63)씨는 최근 유럽계 은행채에 투자해 3개월 만에 14%의 수익을 올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연 환산 수익률로 치면 56%에 달하는 성과다.

이씨는 지난 1월 유로존 위기가 불거져 유럽 은행들의 채권 금리가 올랐을 때 기회를 노렸다. 유럽 우량국가의 대형 은행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고, 위기가 진정되면 곧 채권 금리가 떨어져 채권값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프랑스의 1위 은행 BNP파리바 은행이 달러로 발행한 표면금리 연 7%짜리 후순위채권이었다. 당시 채권가격이 급락, 액면가 100만달러(약 11억원) 채권을 80만달러로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었고, 3월쯤 유럽 채권시장이 안정을 되찾자 채권값은 90만달러까지 상승했다. 이씨는 이 채권을 팔아 10만달러의 매매차익과 함께, 1만달러 이상의 이자수익까지 챙길 수 있었다.

최근 이씨처럼 금융지식에 밝은 수퍼리치(super rich)들이 유럽의 재정·금융위기를 투자기회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해외 채권의 경우, 금융회사가 개인 투자자들에게 직접 투자를 권유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부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유럽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고객이 증권사에 채권 매수 주문을 하면 증권사가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채권을 사준다. 김진곤 우리투자증권 강북프리미어센터 이사는 "특정 유럽계 은행채를 꼭 찍어서 주문하는 부자가 많다"며 "이들은 CNBC나 블룸버그 같은 해외 경제뉴스를 챙겨보며 투자타이밍을 포착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최근에는 채권값이 올라 있어 다시 내려가는 기회를 살피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특히 인기가 있는 은행채는 독일의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 영국의 바클레이즈나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 프랑스의 BNP파리바 같은 대형 은행들이다.

이런 은행들은 유로존 위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평가될 수 있지만, 정부가 결코 파산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표면 금리가 연 7%대라서, 채권 가격이 변동이 없더라도 장기보유하면 6개월마다 이자를 받을 수 있고, 분리과세가 된다는 장점도 있다.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매매 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채권 금리가 1% 내려가면 채권값은 통상 10% 정도 오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대부분 달러로 투자하기 때문에 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유럽 재정위기 위험이 고조될 땐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위기가 진정되면 상승하기 때문에 일부 환차손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대마불사라고는 하지만, 리먼브라더스도 파산한 사례가 있듯이 무작정 우량 은행이라고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며 "개별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 남유럽 부실 국가들의 국채 보유 비중 등 건전성 지표를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자들은 과거에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수익을 내는 투자법을 구사했다. 작년 말 유럽 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시장이 충격을 받았을 때에는, 해외에서 발행된 한국 회사채(KP물)를 헐값에 사서 시장이 안정되자 되팔았던 부자들이 많았다. 2003년 카드 대란 당시 부도위기에 몰린 LG카드의 채권 금리가 20%대까지 올라갔을 때, 이 채권에 베팅한 부자들이 많았다. 김지중 한국투자증권 차장은 "당시 부자들은 정부가 LG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금리가 높은 장기채에 과감하게 투자해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