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하지 않은 알뜰주유소

알뜰주유소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정부에선 기름값 대책의 핵심으로 알뜰주유소 확대를 내세웠지만, 주유소들의 호응은 기대에 못 미친다.

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국에서 문을 연 알뜰주유소 가운데 고속도로와 농협을 제외한 자가폴은 모두 94개. 정부가 중점적으로 세우겠다고 밝힌 서울엔 2곳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지난주 문을 연 광진구 중곡동의 용마주유소는 종교단체가 소유한 곳이라 개인이 운영하는 알뜰주유소는 금천구 시흥동의 형제주유소 한 곳뿐이다. 서울지역 3호 알뜰주유소는 아직 개장이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보다 싸지 않은 알뜰주유소

알뜰주유소에 대한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는 무엇보다 '가격이 알뜰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 2월 10일 독산로에 서울 1호 알뜰주유소로 문을 연 형제주유소는 이날 휘발유와 경유 값이 오히려 주변의 정유사 간판을 단 주유소에 비해 비쌌다. 휘발유는 셀프주유소에 비해선 리터(L) 당 70원 가까이 비쌌고, 비교적 값이 센 SK의 일반 주유소보다도 10원 이상 높았다. 경유도 최대 68원 비쌌다.

왜 그럴까. 석유공사로부터 받는 제품 단가가 싸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형 형제주유소 사장은 "대리점에서 제시하는 가격이 석유공사보다 더 쌀 때도 있다"며 "정유사들이 석유공사가 공급하는 가격을 알고서 자기네 주유소에 가격을 맞춰주니 버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유사와 주유소 업계에 따르면 석유공사가 공급하는 가격은 SK보다는 L당 40원가량 싸지만,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 등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석유공사는 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로부터 석유 제품을 받아 알뜰주유소에 공급하고 있다. 업계에선 삼성토탈이 새로 참여한다고 해도 시장 가격보다 많이 싸게 공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무폴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흡수하려고 하지만 간섭만 많아질 뿐 실익이 없어 전환 신청이 많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사장은 "4000만원어치(2만L) 한 차를 다 파는 데 3일 걸리는데 남는 것은 45만원 정도"라며 "무폴을 할 땐 고객관리를 하면서 이익률도 어느 정도 유지했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 살 깎기 경쟁에 주유소들 외면

정부가 알뜰주유소 확대에 따른 효과로 내세우는 주변 지역 인하 영향이 오히려 알뜰주유소 신규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알뜰주유소로 바꾸고 나서 주변 업체들과 제 살 깎기 경쟁 구도가 형성되며 정작 알뜰주유소가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업주들이 전환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설명.

정부가 급조한 대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정책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달 들어 알뜰주유소로 전환한 함재덕 전 자가폴주유소협의회장은 "정부가 바뀌면 알뜰주유소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염려하는 사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정유사와 거래할 때처럼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많다. 또 정유사들이 외상거래 후 정산하는 것과는 달리 알뜰주유소는 주문 때 대금을 지불하는 것도 주유소 사장들로선 부담스러운 점으로 꼽힌다.

정유사들이 기존 주유소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것도 알뜰주유소 전환이 부진한 이유 중의 하나다. 한 주유소 업주는 "정부에서 며칠을 걸려 대출 등 지원책을 내놓으면 정유사들은 곧바로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한다"며 "알뜰은 바꾸고 나서는 다른 지원이 없는데 정유사 쪽은 포인트나 광고 등의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김대욱 숭실대 교수(경제학)는 "과거 셀프주유소는 처음엔 주변보다 L당 100~200원 싸게 받다가 얼마 뒤 가격을 인상한 일이 많았다"며 "정유사나 주유소가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 없는 상태에서 알뜰주유소 확대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