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남산 N타워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을 웃으며 맞던 김창완밴드는“난해하지 않고 직설적이면서 우회하는 듯한 사운드가 우리 밴드의 매력”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최원식, 강윤기, 김창완, 염민열, 이상훈.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산울림'. 동요 같은 노랫말과 서정적인 사운드, 정직한 보컬로 한국 록과 대중음악계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듣는 밴드다. 김창완·창훈·창익 삼형제가 1977년 결성, 데뷔 앨범 '아니 벌써'를 비롯해 음반 13장과 '개구쟁이' 등 동요집 4장을 낸 밴드 '산울림'이 올해로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산울림을 계승한 '김창완밴드'가 17일 기념 앨범 '분홍굴착기'를 내놓았다.
김창완밴드는 2008년 삼형제의 막내 김창익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맏형 김창완(58)이 드럼 강윤기(57), 베이스 최원식(42), 키보드 이상훈(39), 기타 염민열(24)과 함께 새롭게 꾸렸다. 이번 앨범에는 신곡 '금지곡'과 기존 산울림의 11곡을 더욱 파워풀하고 록적인 요소로 편곡해 담았다. 12시간 걸려 모든 곡을 한 번에 녹음했다고 한다. 지난 2월 그래미상을 받은 황병준씨가 레코딩 엔지니어를 맡았다. 24일 서울 남산 N타워에서 만난 김창완밴드는 "산울림의 곡을 1970년대 록 전성기 때 음악으로 복원했고, 짜깁기된 음악이 아닌 진짜 음악이 탄생하는 현장도 담았다"고 했다.
'산울림' 활동 당시의 김창완, 김창훈, 故 김창익 형제(왼쪽부터). /조선일보 DB
―앨범 타이틀 '분홍굴착기'는 무슨 뜻인가.
김창완(김) "매일 땅 파는 작업을 하는 굴착기는 평소 별다른 변화를 모르다가 어느 날 보면 많이 변해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작업을 해도 티가 안 나는 연약한 중노동이다. 거기에 여성성, 연약함, 섬세함 등을 담기 위해 분홍이라고 했다."
―산울림의 11곡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김 "개인적으로 아끼지만 대중적으로 어필하지 못한 곡을 위주로 골랐다. 사실 어떤 곡을 골랐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12시간 동안 김창완밴드의 연주와 그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강윤기(강) "음악이 연주되고 탄생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공연장을 빌려 하루 동안 실제 공연을 하듯 원테이크(반복하지 않고 한 번에 녹음하는) 방식으로 했다. 연주 녹음에 6시간, 보컬 레코딩에 3시간 걸렸다."
―그렇게 하면 녹음 상태나 완성도가 떨어지진 않나.
최원식(최) "음악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들을 수 없는 시간예술이다. 500분의 1초로 쪼개서 수정하고 짜깁기하는 게 아니라 연주 간 실수가 있고, 충돌과 어긋남이 있는 그런 게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35년 전 산울림 데뷔 때를 회고한다면.
김 "취업을 앞두고 음악을 그만두려고 만든 게 데뷔 앨범이 됐을 때의 설렘과 어색함, 곡을 발표하고 느낀 창피함과 쑥스러움 등이 기억난다. 산을 울리는 소리라는 뜻으로 레코드사 사장이 지어준 '산울림' 이름을 굉장히 싫어했던 기억도 난다. 하하."
―산울림이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을 자평한다면.
김 "아마추어와 프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언더에서 표현하는 도발적인 내용과 음악적 접근 방법을 수용했고, 단순히 언더그라운드가 오버그라운드로 오르기 위한 계단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음악적 생태계를 가진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본다."
―김창완밴드를 만든 이유는.
김 "막내가 사고를 당한 뒤 해체만이 산울림을 온전히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시도했던 여러 음악과, 돈이 없어도 뜨거웠던 음악적 열정과 가치 등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 산울림 활동 당시 세션으로 함께 했던 멤버들과 산울림을 계승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고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다."
―김창완밴드는 산울림의 그늘에 있는 것인가.
이상훈(이) "우리는 산울림의 레퍼토리를 가장 잘 연주하는 밴드지, 산울림이 아니다. 우리의 모체는 산울림이고, 큰 영향을 받았지만 똑같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산울림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는데 김창완밴드는 어떤가.
김 "35년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다. 나는 연기하고, 멤버들은 세션이나 프로듀싱, 교육 등을 하며 각자 돈 벌 구멍을 따로 차고 있다. 밴드는 거의 봉사 단체다(웃음). 음악은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돈을 버는 도구나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가난할 자신이 없으면 음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산울림이 고향이라면 김창완밴드는 죽어 묻힐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