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박물관, 기술 강국의 밑바탕" 기업도 적극 후원

파스칼의 계산기(1642년), 증기기관으로 움직였던 프랑스 파리의 첫 시외버스(1880년), 처음 만들어진 재봉기(1830년대), 영불(英佛)해협을 처음으로 건넌 비행기(1909년)….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는 기술공예박물관의 소장품과 전시 목록이다. 이 박물관은 파리 시민들에겐 반드시 한번 가봐야 할 박물관으로 통한다. 1794년에 세워져 프랑스의 기술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 매년 25만명이 이곳을 찾는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이후부터 산업기술 유물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산업박물관을 곳곳에 세웠다.

프랑스 기술공예박물관, 독일박물관(1925년), 영국 과학기술박물관(1857년), 미국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1933년) 등이 대표적이다. 자국의 기술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박물관들은 신(新)기술 제품을 보존해 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공간이자 문화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업박물관에서 노벨상 꿈 키운다

프랑스 기술공예박물관은 첫 제품, 첫 기술의 보존을 강조한다. 처음으로 파일럿을 태우고 10m 높이로 100m가량을 날았다는 비행기(1885년)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첫 비행이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그것 자체도 역사"라고 말했다. 박물관 소장품은 8만5000점에 이른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오전 기술공예박물관은 평일 개장시간(오전 10시) 전이었는데도 30~40여명이 박물관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어린 손주 손을 잡고 나온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많았다. 손주에게 프랑스에서 첫 번째로 만든 자전거를 보여주던 빌망씨는"아이들에게 우리나라 기술 발전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어 데리고 나왔다"고 말했다.

독일도 자국의 우수한 기술을 후손에게 전해주려는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독일 뮌헨에 들어선 독일박물관이 대표적이다. 독일박물관은 벤츠가 만든 첫 자동차(1886년), 독일 최초의 잠수함(U1), 첫 디젤엔진, 최초의 프로그램화된 컴퓨터 등 독일 기술과 발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과거에 한 노벨상 수상자가 '어릴 때 독일박물관에 다니면서 기술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 박물관이 독일 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박물관 입구엔 "우리는 독일박물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대형 입간판이 서 있다. 2010년부터 2025년까지 4억유로(6000억원)를 들여 진행하는 박물관 리노베이션 공사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박물관 홍보담당자 베른하르트 바이데만씨는 "우리 박물관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 박물관의 연간 관람객은 141만명. 뮌헨시 인구(130만명)보다 많다. 그런 박물관의 중요성을 알기에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사비 중 3억6000만유로를 지원하고, 나머지 돈은 지멘스와 BMW 등 독일 기업이 후원한다.

◇전시관에서 체험형 공간으로

선진국의 박물관은 보존과 전시를 넘어 체험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모하고 있다. 파리의 라빌레트 과학산업박물관이 대표적인 곳이다.

1986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어린이들이 즐기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짜였다. 지난 18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우주·에너지·교통 등 여러 주제의 전시관이 화려한 설비와 함께 들어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9개월마다 새로운 대형 전시를 하며 관람객을 끌어들인다고 한다. 덕분에 이 박물관은 매년 340만명이 찾는 파리의 명소가 됐다.

특징적인 것은 산업기술 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지구 온난화 같은 위험성까지 보여줘 관람객의 비판적 사고도 키운다는 점이다. 마리 피에르 드 슈르빌 부관장은 "기술과 과학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어린이들이 기술과 과학을 즐기고 체험하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박물관은 2014년에 비디오게임에 관한 대형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2년 후 전시 프로그램까지 짜놓고 박물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