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성난 시선 느꼈나… 자기반성 나선 금융사

'인터넷뱅킹 개설 시 실명확인증표 첨부', '최초 신규일부터 타행환수수료 면제', '당발 외화 송금 시 수수료 감면'….

남녀노소가 다 이용하는 은행인데, 그곳에서 사용하는 말들은 외계어 투성이였다. '인터넷뱅킹을 신청할 때는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첫 거래 때부터 다른 은행으로 송금하는 수수료는 받지 않습니다', '저희 은행에서 해외로 돈을 보낼 때 수수료를 깎아 드립니다'로 바꿀 수 있는 말이다.

지난달 초부터 한 달여 동안 신한은행 직원 100여명이 달라붙어 은행 상품 설명서와 약관 496개를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고객이 아닌 은행원 중심 용어가 너무 많다는 자체 분석이다.

상품 약관이나 안내서에서 은행원들만 알 수 있었던 복잡한 말들을 단순하게 만들겠다는 내용을 포함, 신한금융그룹은 고객 눈높이에서 계열사의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점검해 33개의 우선 개선 과제를 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왜 은행원밖에 못 알아듣는 말을 자꾸 쓸까?", "대출받을 때 왜 필요도 없는 개인 신상 정보까지 함께 적으라고 할까?" 소비자들이 은행 창구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의문을 품었던 문제들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수십년간 이어져 온 관행이라는 이유로, 이런 문제 해결을 미뤄 왔었다.

최근 변액연금보험의 수수료 폭리와 수익률 정보의 불투명성을 폭로한 컨슈머리포트를 계기로, 금융회사들 사이에 '자아비판'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부터 '따뜻한 금융'을 새 경영 모토로 내세운 신한금융그룹이 이런 흐름에 앞장섰다.

◇"어렵게 설명하고, 판 뒤엔 방치"

소비자 입장에선 신한금융의 개선 과제들이 금융회사의 자기반성 리스트인 셈이다. 신한금융그룹의 최대 계열사인 신한은행에선 나이, 투자 목적과 관계없이 무분별하게 상품을 권하는 관행부터 없앨 방침이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 부어야 원금을 건지는 장기(長期) 보험상품, 단기적으로는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장기 채권형 펀드상품을 생활비가 급한 65세 이상 은퇴 계층에 판매하는 기존의 영업 관행을 척결할 예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 지점에 펀드나 방카슈랑스 목표치가 내려오면, 이를 채우기 위해 현란한 말로 노인들을 장기상품에 가입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대출신청서에 학력, 결혼 여부, 배우자 주민번호, 맞벌이 여부를 묻는 항목을 없애기로 했다. 대출액과 금리를 결정하는 데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지금까지는 돈을 빌려주면서 관행적으로 수집해 오던 개인 정보다.

또 다른 계열사인 신한카드에서는 주유 할인, 항공 마일리지 적립, 대형 매장 할인 등 신용카드 서비스를 고객에게 상기시켜 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천연가스펀드·선박펀드·니켈펀드·자문형 랩 등 최근 수익률이 떨어져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를 위해 신한금융투자는 직원 능력 평가에 직원이 판매한 상품의 수익률 지표를 반영할 계획이다.

◇수익과의 조화는 미지수

금융회사의 자기반성은 신한금융뿐만이 아니다. 교보생명은 고객의 권리를 알아서 챙겨주는 '평생든든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너무 오래전에 가입한 보험이라 해당 보험상품이 뭘 보상해 주는지도 모르는 고객이 많은데, 고객이 놓치고 있는 각종 혜택을 설계사가 알아서 챙겨주는 서비스다. IBK기업은행은 26일 기업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과 동시에 거래하고 있는 고객 16명으로 구성된 '참좋은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고객의 뜻을 담겠다는 생각이다.

금융권에서 불고 있는 '착한 금융' 신드롬은 소비자 불만에 대한 소극적 대응방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시중 은행의 한 부행장은 "태생적으로 금융회사는 수익을 먹고 사는 조직"이라며 "수익을 못 낼 때도 이런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