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최고의 글쟁이인가… 경박한 욕망가였나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허균 지음｜정길수 편역 | 돌베게｜320쪽｜9500원

'여러 해 연이어 중국 가는 길 비록 힘들지만/옛사람 책 많이 얻어 오는 즐거움 있네/가진 것 죄다 털어 책 산다고 비웃지 마오/나는 장차 책벌레가 되려고 하니'

허균(許筠·1569~1618)이 1616년 1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북경에서 쓴 시의 한 구절이다. 독서가로 소문난 허균은 1616년에만 은(銀) 1만5000냥을 들여 책 4000권을 사들였다고 알려져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은 당대 제일의 시인이자, 문장가, 비평가로 이름을 날린 문인이었다. 하지만 정치가로서는 '반항아'로 추문 속에 살았고, 광해군 때인 1618년 역모죄로 몰려 처형당하면서 이름조차 입에 올릴 수 없는 '천지간의 괴물'로 낙인찍혔다. 이 책은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로 살아간 허균의 시문(詩文)을 가려뽑은 것이다.

동인(東人) 영수인 허엽의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허균은 15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명나라에 다섯 차례나 사신으로 다녀온 외교 전문가였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거나, 명나라 관원들을 상대하면서 보여준 해박한 역사·문학 지식이 그의 무기였다. 그러나 성리학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조선에서 불교와 양명학 서적을 탐독하고, 서얼들과 어울렸던 그는 파직과 복직을 밥 먹듯 거듭해야 했다.

1607년 삼척부사를 지내던 시절, 불교 숭상을 이유로 탄핵당했다. 불경을 외며 승복을 입고 부처에게 절을 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이다. 허균 스스로 불교에 꽤 깊이 경도돼 있다고 고백하는 편지를 선배에게 보내기도 했다. 삼척에서 파직 소식을 들은 후에 쓴 시는, 한 발짝 더 나간다. 탄핵이 빗발쳐도 부처의 청정세계에 가고 싶은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고 한 후, '예교로 어찌 자유를 구속하리/부침을 오직 정(情)에 맡길 뿐/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따르라/나는 내 삶을 살아가리니'라며 맞섰다. 이런 거침없는 언행은 당대 주류 사회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일기'는 허균에 대해 '요사스럽고 음란한데 다만 글재주 하나로 진신의 반열에 끼었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곤궁하던 시절에 나는 당신과 마주 앉아 작은 등불을 켜 밤을 밝히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내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울 것 같으면 당신은 그때마다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게으름 부리시면 제 부인첩(관리의 아내에게 내리는 품계)이 그만큼 늦어집니다. 그때야 어찌 알았겠는가. 십팔년 뒤에 이 부질없는 문서 한 장을 당신의 영정에 바치게 될 줄을.' 1609년 정3품 형조참의에 오른 뒤 '숙부인'의 직첩이 내려오자, 10여년 전 전란통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세상의 맛은 늘그막에 쓰고/사람의 마음은 마지막이 어렵지/문학도 벼슬도 모두 다 누리려다/한순간에 끝날 줄 그 누가 알까' 1616년 북경에서 쓴 시가 화근이 됐을까. 2년 후, 그는 이 시구대로 역모혐의를 뒤집어쓰고 처형장에서 세상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