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호스피스 자원봉사 대모된 한국인

1972년 간호학을 공부하러 독일 베를린에 간 스물두 살 한국 여성은 40년이 지난 지금,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의 대모(代母)'가 됐다. 독일에서 죽음을 앞둔 이민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 자원봉사단체 '동행(mitgehen)'을 이끌고 있는 김인선(62)씨. 그는 2005년 단체를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이민자 3000여명의 마지막 길을 함께 동행(同行)했다. 김 대표는 다문화인들 간 교류에 힘쓴 공로로 2008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1970년대 초 베를린 직업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한 김 대표는 이후 15년간 독일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우연히 호스피스 병원에서 강의를 할 때 '이민자들의 죽음'이라는 화두가 가슴을 때렸다고 했다.

"호스피스를 하다 보니 제 죽음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졌어요. 이민자인 내가 말도 안 통하는 독일 차가운 땅에서 묻힐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고, 한국에 가도 아무도 없는데 어디서 죽어야 할까…. 그게 나만 아니라 많은 이민자의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명보험금을 다 털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김 대표의 '동행'에는 한국·중국·일본·베트남·터키·인도 등 12개국 출신 자원봉사자들 170여명이 일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신과 말이 통하거나 같은 국가 출신 이민자 환자를 주로 돌본다. 말벗이 되어주고 함께 산책도 하고 고향의 음식도 만들어준다.

김 대표가 돌본 이민자 환자 중에는 치매에 걸린 한국인 할머니가 있었다. 한국인에게 상처를 받았는지, 이 여성은 한국인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는 거부하고 독일 사람만 찾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치매 탓에 그간 배운 독일말은 다 잊어버리고 한국말만 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김 대표가 돌봐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처음엔 김 대표를 싫어했지만 나중에는 김 대표에게 "청국장을 만들어달라"는 부탁까지 하며 의지했다.

9년 전 돈 때문에 독일 사람에게 시집온 태국 여성은 남편으로부터 에이즈가 옮았다. 남편은 도망가고 말도 안 통하는 독일에 혼자 남은 이 여성도 김 대표가 돌봤다. 태국 여성은 같은 태국인들이 자기 상황을 아는 것이 싫어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김 대표와 태국 여성은 영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 대화했다. 여성은 죽기 전 김 대표에게 말했다. "동행해줘서 고마웠어요. 인연이 있으면 다음 생에 다시 만나요."

"한국 이민자들은 그저 하나라도 더 모아서 한국으로 보내주려고 하고, 자기한테는 돈 한번 제대로 안 씁니다. 그러다가 암에 걸리면 (받아들이지 않고) 투쟁하죠. '내가 왜 암에 걸려?'하고요. 매일 매일 충실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김 대표는 "독일은 200개 국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이민자들 각자의 정체성은 인정하지 않고 독일 사회로 흡수하려고만 했다"며 "한국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다니 안타깝더라. 다문화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제도를 잘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