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서 용케 살아남은 백제인… 쪽배로 구드래로 도망갔다 하죠"

"한강, 금강, 영산강을 가진 백제는 3국 중 가장 많은 강을 가졌던 나라였어요. 중국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다시 일본으로 수출한 고대의 '원조 한류(韓流)' 국가지요. 그런 백제가 강을 거슬러 올라온 당나라 수군에게 무너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27일 오후 충남 부여 낙화암, 백화정(百花亭) 아래 너럭바위에 앉은 사람들이 이날 강사로 나선 최광식 문광부 장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국립중앙도서관·조선일보·교보문고가 공동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이 27~28일 공주·부여·보령·청양 일대를 답사했다. 이번 주제는 '금강의 향기, 서해의 꿈을 찾아서'. 탐방단은 사비 백제의 궁성이었던 부소산성 정문 사비문에서 낙화암까지 2㎞ 산길을 걸어온 참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백제의 여인들도 이 길을 따라 치맛단을 끌며 도망쳐온 것일까.

"나당 연합군에게 쫓긴 백제인들이 낙화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면, 궁녀뿐 아니라 귀족부터 평민까지 다양한 이들이 함께였겠지요. 또 죽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이들은 절벽 아래 고란사 나루터에서 쪽배에 옮겨 타고 하류의 구드래 나루터로 도망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주변 산속으로 숨어들어 다시 한 번 나당 연합군과 목숨을 걸고 싸울 백천강 전투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는 설화입니다." 국민대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는 "삼천궁녀가 이곳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얘기는 정사(正史)의 기록이 아니라 구전(口傳)이 사실이 된 경우"라며 "'역사적 진실'이라기보다 '설화적 진실'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백성들은 무너진 백제를 그리며 아름다운 삼천궁녀의 정절(貞節) 이야기를, 나라를 다시 세울 꿈을 꿨던 유민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 마음속에 진실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번 답사는 '길 위의 인문학'이라기보다 '강 위의 인문학'이었다. 탐방단은 자결에 실패한 의자왕이 당나라 군대로 끌려가 무릎을 꿇어야 했던 공주 공산성 위에서 금강을 내려다봤다. 금강변 고마나루와 웅신단(熊神壇)에 들러 건너편 연미산의 작은 굴에 깃든 곰 여인과 인간 남자의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비단강이 비단강임은 많은 강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그대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계백장군의 말 안장을 형상화한 부여 백제보에서 너른 강 줄기를 내려다보며, 탐방단은 최광식 장관이 낭독한 나태주 시인의 시 '금강가에서'를 함께 음미했다.

탐방단은 다음날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와 함께 다산 정약용이 좌천돼 살았던 충청수영성, 9세기 중반에 지어졌던 성주사지, 영·정조시대 남인의 영수였던 채제공의 초상을 모신 사당과 청양 장곡사 등도 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