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차가운 도시 남자? 진짜 별명은 아줌마예요"

186㎝의 훤칠한 키, 조각 같은 콧날, 그러나 주황색 에어로빅복. 잘생긴 배우 류진(40)이 망가졌다.

그동안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재벌 2세 등의 역할을 주로 했던 그가 MBC 일일시트콤 '스탠바이'에서 코믹연기를 하며 제대로 망가지고 있다. 치명적인 실수를 연발하고, 온갖 것을 걱정하는 '강박증 소심남' 아나운서 류진행 역이다. 에어로빅복을 입고 리포팅을 하고, 술에 취해 비키니 사진이 그려진 현수막을 덮고 길에서 잠을 자는 식이다. 시청률은 5%대로 그리 높지 않지만 시청자 게시판에는 "개그맨의 피 수혈한 류진" 등의 호평이 가득하다. 지난달 26일 서울 논현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류진을 만났다.

―코믹연기는 할 만한가.

"매회 대본마다 그동안 안 해본 연기가 하나씩은 꼭 있더라.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찌질하게 우는 장면 등을 촬영했는데 너무 자연스러워 스스로도 놀랐다. 그 때문인지 요즘 '나는 누구인가' '내 본모습은 뭔가' 하고 자문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하."

―데뷔 17년 만에 첫 시트콤인데.

"다른 드라마를 하면서 차도남 이미지 속에 중간 중간 허당인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제작진이 그런 모습을 보고 캐스팅한 듯하다. 사실 얼마 전 끝난 '하이킥3'의 윤계상씨 역할로 섭외도 받았었다. 드라마 촬영 중이었고 외모보다 많은 나이 때문에 결국 못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이다.

"무겁고 진중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두 아이가 내 연기를 따라 하는데 어느 날은 따귀를 때리는 장면을 따라 하더라.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밝은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모습은 어떤가.

"내 별명이 '아줌마'다. 예전 드라마를 함께 한 안재욱씨가 지어줬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수다를 떠니 붙은 별명이다. 난 진지한데 상대방은 웃기다고 한다. 시트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이 '정말 잘 생각했다' '한 번쯤은 할 줄 알았다'고 했다."

―주황색 에어로빅복을 입고 나온 장면이 화제였다.

"대본을 보고 '이게 뭐야.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나름 잘된 것 같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옷이고, 이제껏 입은 옷 중 가장 타이트했다. 정준하씨가 2008년 무한도전 에어로빅 특집 때 입었던 옷이라더라. 코믹 연기는 매 순간 화면에 어떻게 나올지 감이 안 잡힌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내 연기를 보고 웃으면 더 오버를 하고, 안 웃으면 톤을 조금 죽이는 방법으로 하고 있다."

―망가지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은가.

"이 작품을 통해 나에게 재미있고 밝은 이미지가 생길 것 같다. 그러면 기존의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의 역할뿐만 아니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드러운 역할까지 다 들어오지 않을까.(웃음)"

―차인표씨가 나오는 KBS 시트콤과 같은 시간대에 경쟁하고 있는데.

"선의의 경쟁자가 있으니 전투력이 상승한 느낌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입소문밖에 없다. 뭐, 아이들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면 시청률이 조금 오르지 않겠나. 하하."

―그동안 맡았던 역할들이 매번 비슷했다.

"개성 강한 역할을 찾아봤지만 그런 역할에는 다른 사람이 이미 캐스팅되고 종전에 했던 비슷한 역할만 나에게 왔다. 감독님들도 처음에는 '다음엔 다른 역할 해보라'고 하고는 나중엔 또 비슷한 역할로 날 찾더라."

―주연작은 많은데 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한 듯한 느낌이다.

"배우는 작품과의 궁합이 있는데 난 운때가 안 맞았던 듯하다. 예전 윤석호 PD의 '겨울연가'에 섭외받았지만 김수현 작가님의 작품을 하느라 참여하지 못했다. 나중에 윤 PD의 '여름향기'를 찍었지만 시청률이 많이 차이가 났다. 돌이켜보면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방에 올라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한 계단씩 올라간 것 같다. 그렇다고 거꾸로 걸어 내려간 적도 없고. 불안감이나 답답함 같은 것은 없다. 내가 마트에서는 얼마나 인기가 좋은데.(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