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리라, 들국화

데뷔 후 27년이 흘렀지만 그의 드럼은 여전히 뜨겁게 심장을 울린다. 세월이 묻은 목소리는 느긋하다. '한국 록의 신화'로 불리는 밴드 '들국화'의 드러머였던 주찬권(57)이 7년 만에 단독 정규 앨범 6집 '지금 여기'를 냈다. 작곡·작사·편곡·연주·노래까지 혼자 작업한 9곡을 담았다. '쉽게 생각해' '인생 뭐 있다구' 같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신곡들은 이제 삶을 담백하게 관조한다.

지난달 30일 주찬권이 경기도 성남 정자동에서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 '버디'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주찬권은 "워낙 젊었을 때 힘든 일을 많이 겪었던 덕에 지금은 살고 죽는 문제에도 초연하다. 이번 앨범은 그렇게 많은 것을 떠나보낸 한 음악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천천히 써내려간 일기와도 같다"고 했다.

'들국화'는 1985년 1집 앨범을 내며 데뷔했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같은 노래는 발표하자마자 음악팬들을 들끓게 했다. 주찬권은 "당시 잘나가던 이태원 클럽 '라이브'에서 나는 기타리스트 최구희랑 '믿음 소망 사랑'이란 밴드로 9시 무대에 섰고, 10시엔 전인권·최성원·허성욱이 '들국화'란 이름으로 나왔다. 인권이가 '드럼 좀 쳐달라'길래 나중에 들국화에 합류했다"고 했다.

폭발적인 인기. 그러나 수입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주찬권은 "공연하고 돈을 받아도 이래저래 다 떼이고 늘 빈털터리였다. 다들 장발이라 방송엔 출연도 못했다. 멤버들이 머리칼을 자르지 않겠다고 해서 CF도 못 찍었다"고 했다.

1987년 2집을 냈지만 들국화 멤버들은 곧 뿔뿔이 흩어진다. "다들 매너리즘에 빠졌다. '3집을 내고 다시 활동을 시작하자'고 했지만, 1·2집이 워낙 성공한 탓에 부담이 컸다. 97년 건반 치던 성욱이가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숨지고, 인권이도 그 무렵 구속됐다. 2000년 후배들이 헌정앨범을 내면서 다시 모였지만, 인권이가 건강이 안 좋아 다시 활동은 미뤄졌고…."

주찬권 인생에도 굴곡이 많았다. 20살에 음악 하는 걸 반대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집을 나왔다. 가정을 이뤘지만 이혼하고 두 딸을 혼자 키우며 음악 활동을 계속 해왔다. 주찬권은 "생활고 때문에 밤무대에도 섰고 때론 술집에서도 연주했지만 음악은 여전히 내 팔자였다"고 했다.

6월 초, 주찬권과 전인권 최성원 조덕환은 다시 '들국화'란 이름으로 무대에 설 계획이다. 주찬권은 "인권이와 성원이가 예전엔 자주 부딪혔지만 이젠 다들 나이를 먹었으니 괜찮을 것 같다"며 "인권이 몸이 좋아지는 대로 함께 무대에 서겠다"고 했다.

주찬권의 단독 공연도 있다. 10일부턴 매주 목·금·토요일 오후 9시 '버디'에서 6집 앨범 발매 공연을 한다. 6월 2일엔 서울 마포구 서교동 브이홀에서도 단독 콘서트를 연다. 주찬권은 "젊은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요즘도 자주 홍대앞에 가서 음악을 듣고, 홀로 드럼을 연습한다"고 했다. 공연문의 (031)719-3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