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心으로 돌아간 '007'

지난달 30일 터키 이스탄불의 예니 모스크 주변 전통시장 세트장. 검은색 아우디 승용차 한 대가 옆으로 누운 채로 그릇 노점에 처박혀 있었다. 뒤편에 세워진 회색 지프 앞유리에는 동그란 총탄 구멍 8개가 뚫려 있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듯한 이곳은 영화 007의 23번째 시리즈 '스카이폴(Skyfall)' 촬영 현장이었다.

1962년 '살인번호(Dr. No)'를 시작으로 50년째 이어진 시리즈의 촬영장답게 현장은 거대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모스크 주변에 500m 길이 시장이 만들어졌다. 상인, 관광객 등 엑스트라만 500여명에 달했다. 보안도 철저해 촬영장 전체를 천막으로 두르고, 외부에 바리케이드와 경비원 수십명을 세웠다. 현장을 안내한 스턴트 코디네이터 케리 파월은 "본드(대니얼 크레이그)와 이브(나오미 해리스)가 악당과 차량 추격 장면을 촬영하는 현장"이라며 "영화에는 1분 남짓 나오겠지만 최고의 화면을 위해 촬영은 2주간 진행한다"고 했다.

10월 26일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선보일 '스카이폴'은 터키가 주 무대이다. 이스탄불은 '007 위기일발'(2편)과 '007 언리미티드'(19편)의 무대이기도 했다. 제임스 본드는 '카지노 로열(2006)' '퀀텀 오브 솔러스(2008)'에 이어 다시 대니얼 크레이그(44)가, 가수 비와 함께 '닌자 어쌔신'에 출연했던 흑인 여배우 나오미 해리스와 프랑스 모델 베레니스 말로가 본드걸로 나온다. '아메리칸 뷰티'로 2000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샘 멘데스(47)가 연출을 맡았다.

촬영장 공개 하루 전 이스탄불 한 호텔에서 만난 멘데스 감독은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하나의 세계"라며 "007 영화 탄생 50주년 기념작이 될 이번 작품을 역대 최고의 007로 만들겠다"고 했다. 대니얼 크레이그도 "49년 전 바로 이날(4월 29일)도 터키에서 007을 찍은 날"이라며 "이곳에서 최고의 007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영화계에선 '스카이폴'이 "웃음기를 쏙 뺀 007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티저 영상에는 어두운 화면과 진지한 대사만 담겨 있고, 제작진과 배우들은 영화에 대한 내용을 철저히 함구하고 있기 때문. 크레이그는 "티저는 영화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며 "유머는 우리가 노골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진은 이번 작품이 '백 투 더 클래식(Back to the Classic)'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에 보여줄 본드는 이언 플레밍(007 원작 소설 작가)이 그렸던 고전적 본드이다. 제작자나 관객에게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대니얼 크레이그)

크레이그는 마흔을 넘긴 나이인데도 액션 장면 대부분을 스턴트 없이 소화해낸다. 그는 비결을 묻자 "그저 열심히 뛰면 된다. 당신도 할 수 있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