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망치는 어린이 음료… "추천할 제품이 없다"

직장인 최정도(37)씨는 최근 네살배기 아들을 치과에 데리고 갔다가 두 달 가까이 충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쪽 이가 대부분 썩었다는 것이다. 평소 아이의 양치에 많은 신경을 썼음에도 충치가 생긴 것은, 요즘 아이가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어린이 음료' 때문이었다. 최씨는 "포장을 보니 비타민이 함유돼 있다고 해서, 탄산음료보다는 좋은 줄 알았는데 결국 충치를 키우고 말았다"며 "치과에 다녀온 후 못 먹게 하는데도 아이가 음료의 단맛에 중독돼버려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만화 캐릭터로 포장된 어린이 음료가 충치와 비만을 유발할 위험이 매우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은 3일 K-컨슈머리포트 3호 '어린이 음료 상품 비교정보'를 통해 "시중에서 판매 중인 17개 어린이 음료의 pH(산도)와 당 함량 등을 비교해 보니 모두 충치와 비만 유발 위험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소비자원은 시중에 유통되는 어린이 음료 가운데 추천할 제품이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많은 어린이 음료가 '튼튼', '홍삼' 등의 표시를 이용해 건강식품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몸에 해로운 기호식품에 불과하니 가급적 먹여선 안 된다는 뜻이다.

◇콜라만큼 해로운 어린이 음료

소비자원은 어린이 음료의 유해성을 확인하기 위해 17개 제품의 성분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어린이 음료들의 pH는 2.7~3.8로 분포됐다. pH는 7이면 중성, 미만이면 산성, 초과면 알칼리성으로 분류된다. 실험을 진행한 송규혜 소비자원 식품미생물팀장은 "pH가 낮아질수록 음료의 청량감은 좋아지지만 치아의 보호막인 에나멜 층을 손상시켜 충치 유발 위험이 커진다"며 "특히 pH가 5.5 이하면 위험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모든 제품이 pH 5.5를 하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업체들이 맛을 위해 '구연산' 등 산성물질을 넣어 일부러 pH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송규혜 팀장은 "2.7~3.8 사이인 어린이 음료의 pH는 콜라·사이다 등 탄산음료(pH 2.4~3.3)와 유사한 수준"이라며 "어린이들이 음료를 입에 오래 머금고 있으면 치아 손상 위험이 무척 커진다"고 설명했다.

또 17개 어린이 음료 모두 설탕 같은 당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화학합성성분의 '감미료'를 첨가해 단맛을 강화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당은 비만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 음료의 100mL당 당 함유량은 5.0~14.4g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설탕 덩어리로 알려져 있는 콜라(12.1~13.0g)와 유사한 수준이다. 100mL당 당 함유량이 10g을 넘는 제품은 디보키즈업 홍삼음료 등 6개에 달했다. 또 식약청은 '한 병당 단백질 함량이 2g 미만이면서 당 함량이 17g을 초과하는 제품'을 '고열량 저영양 식품'으로 분류해 어린이 시청 시간대 TV광고 금지 등 규제를 하고 있는데, 전체 17개 가운데 4개 제품이 여기에 해당했다. 쿠우오렌지(한 병당 당 함량 38g), 카프리썬 오렌지맛(23g), 유기농아망오렌지(21g), 튼튼짱구(20g)는 단백질이 전혀 없이 당만 잔뜩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 당 성분 등 표시 눈속임

어린이 음료는 세균 번식에도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원은 "음료를 한 번에 마시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눠 마시면 침이 들어가는데 이 상태로 상온(25도)에 4시간 이상 방치시켜 보니 음료 1mL당 100만 마리의 세균이 번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는 미생물학적으로 초기 부패 상태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세균은 기온이 높을수록 더 빨리 증식돼, 33도에선 3시간만 지나도 초기 부패 단계에 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태에서 음료를 마시면 세균 덩어리를 마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17개 어린이 음료 중 13개가 더 많은 침을 유입시키는 특성이 있는 '피피캡 뚜껑'으로 돼 있었다. 중앙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형태로, 뚜껑 테두리를 들어 올린 후 빨거나 용기를 누르면 음료가 나오는 방식을 의미한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어린이들이 재미 삼아 피피캡 뚜껑을 계속 입에 물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오래 물고 있을수록 더 많은 침이 들어간다"며 "이 뚜껑에 혀가 끼는 사고도 간혹 발생하니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비자원은 소비자들에게 어린이 음료 섭취를 가급적 자제시키라고 권고하고, 부득이 먹일 경우엔 바로 입을 헹구고 섭취 30분 후엔 양치를 시키라고 조언했다. 또 남은 음료는 반드시 냉장 보관하라고 주문했다. 소비자원은 "만화 캐릭터로 치장된 어린이 음료에 아이들이 끌려 그 맛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