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전 잊었나… 전력 예비율 이틀 연속 10% 미만
3일 오후 찾은
서울 명동의 한 쇼핑몰에는 따로 출입구가 없었다. 1층의 출입문이 모두 열어젖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쇼핑몰 입구에 설치된 에어컨에는 '희망온도 11도'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지난해 9월 15일 초유의 전력 대란을 겪은 지 8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전력 과소비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코앞에 닥쳤던 블랙아웃(Blackout·동시 대정전) 우려는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됐다. 때 이른 더위가 이어지면서 2일 오후 3시 통상 10%를 넘어야 안정권으로 해석되는 전력 예비율은 7.1%로 떨어졌고, 3일 같은 시각에는 9.3%를 기록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인 5월 초에 전력 공급이 비상인 것이다.
취재팀은 3일 오후 1~3시 서울 강남·북의 대표적인 상권인 강남역과 명동 일대 상점의 에너지 이용 실태를 취재했다. ①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과 2호선 강남역 사이 700m에 있는 상점 51곳 ②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명동예술극장 사이 300m에 있는 상점 69곳 등 120곳을 취재한 결과 전체의 65%에 달하는 78곳의 상점이 출입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출입구를 모두 개방한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은 희망온도가 15도에 맞춰져 있었다. 직원 김모(30)씨는 "직원들 입장에선 쌀쌀하다고 생각하지만 손님들이 시원해야 하니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핫팬츠와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손님들로 북적인 여성의류 매장의 직원들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스포츠 브랜드 매장 앞에 한참 서 있던 여고생 최모(17)양은 "매장에서 찬 바람이 나와서 굳이 안에 안 들어가도 시원하다"고 했다. 명동 상점 69곳 중 46곳이 출입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대형 의류브랜드와 화장품 매장 등이 밀집해 있는 강남대로도 명동과 마찬가지였다. 51곳의 상점 중 32곳이 문을 열어젖힌 채 에어컨을 가동했다. 이날 낮 기온이 25도를 기록하며 거리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 많았지만, 한 문구점의 직원들은 긴팔 후드티를 유니폼으로 입고 있었다. 이 문구점 역시 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건국대 전기공학과 박종배 교수는 "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은 쉽게 말해 하나만 써도 될 전기를 두세 개씩 쓰는 것과 같다"며 "이 같은 행태가 블랙아웃의 우려를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