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 선생님 열정, 학교를 살리다

서울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문재남(61) 교사. 눈가와 이마에 주름이 잡힌 문 교사는 경력 35년의 수학 선생님이다. 그는 문서작성에 필요한 파워포인트·포토샵은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능하다. 10년 전 여름·겨울 방학을 꼬박 쏟아부어 연수를 받았다. 이 지식으로 그는 컴퓨터 자격증을 따려는 제자에게 개인지도도 해주고, 수업 교재나 취업 관련 자료도 파워포인트 등으로 직접 만든다.

일신여상 교사들의 평균 연령은 52.2세. 전국 특성화고 교사의 평균 나이(42.8세)보다 열 살이 더 많다. 하지만 이 학교는 지난해 취업자 수(282명)로는 전국 1위, 취업률은 서울에서 두 번째(59.2%)였다. '취업 명문고'가 된 비결엔 50~60대 교사들의 힘이 있었다.

나이 든 교사는 외면당한다는 얘기가 일신여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젊은 교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하고,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노하우는 그들만의 경쟁력이 됐다.

서울여상 등과 함께 서울 5대 여자상고로 손꼽혔던 일신여상은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졸업생 200명 정도가 은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취업률이 10%대로 곤두박질쳤다. 학생들은 특성화고를 기피했고 순식간에 '공부 못하는 학생이 가는 학교'가 됐다. 문규안(57) 교사는 "교직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교사들은 "선(先)취업 후(後)진학"을 모토로 내세워 지금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염색한 머리카락 사이로 흰머리가 보이는 일신여상 이윤훈(59) 교사는 4년 전부터 매주 화요일 1교시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지하철 역으로 간다. 한 시간을 달려 가는 곳은 여의도. 은행·증권사 등의 인사 담당자를 만나 학생들의 채용을 권하기 위해서다. 처음엔 미리 연락하고 가도 인사담당자들이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아, 아예 무턱대고 찾아가기도 했다. 인사 실무자는 주로 20~30대. 처음엔 겸연쩍고 서먹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용기를 내 학교에서 만든 취업 자료를 꺼냈지만 "우리 애들 채용해달라"는 말이 쉽게 안 나왔다. 요즘은 다르다. 이 교사는 "이젠 기업이 원하는 인재나 교육과정에 대해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홍보했다"고 말했다.

담당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한 증권사 인사 담당자는 "쉰살이 넘은 아버지뻘 교사가 와서 깜짝 놀랐다"면서 "선생님 열정 보니까 일신여상 학생들 믿고 뽑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민칠기(56) 교사는 '취업 백과사전'이다. 지난 20~30년간 학생들을 다양한 기업에 취업시킨 경험이 있어 회사마다 고유의 문화나 인재상 등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 게다가 수십년 동안 알아 온 기업체 인사 담당자나 취업한 졸업생 등 인맥도 만만찮다.

일신여상 출신으로 은행에 다니다 9년 전부터 교편을 잡은 오은주(36) 교사는 "나이가 드셨지만 평일이나 휴일, 밤낮 가릴 것 없이 항상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젊은 교사들이 부끄러울 정도"라고 했다.

3~4년 새 일신여상의 취업률은 두 배 높아졌다. 지난해에만 연봉 2000만원이 넘는 대기업에 들어간 학생이 180명이고, 그중 44명은 은행·증권사에 취직했다.

지난달 교육과학기술부가 취업률과 취업 내용 등을 평가해 선정한 '취업기능강화사업 최우수 학교'로도 뽑혔다.

신용구(56) 일신여상 교장은 "교사들도 오십대가 넘어가면 '적당히 시간 때우다 퇴직하자'고 생각하기 쉽다"며 "우리 학교 교사들은 '나이 오십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불만 대신 열성적으로 일하고 학생들 취업 성적에 따라 울고 웃는 교사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