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사치의 문명'과 만나다

다이아몬드 71개(대형 13점 포함), 진주 141개, 루비 132개, 에메랄드 86개…. 보석이 점점이 박힌 17세기 오스만제국 술탄의 터번 장식은 보험사 평가액(약 17억원)이 과소평가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극한의 사치다. 루비와 터키석이 촘촘히 박힌 높이 89㎝짜리 금도금 촛대와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 100여개로 장식한 커피잔 받침에서도 눈을 뗄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일 시작한 터키문명전 '이스탄불의 황제들'은 국내 관람객들에겐 오스만 튀르크(1299~1922) 제국이라는 '사치'의 문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이스탄불의 톱카프궁 박물관·고고학박물관·이슬람미술관, 앙카라의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 등 터키 유수 박물관에서 간추린 유물 187점은 고대 히타이트 제국부터 20세기 초 근대 오스만제국까지 아우른다. 전시의 핵심은 오스만 제국 전성기인 16세기 전후 보석으로 장식한 공예품이다. 오스만 제국 궁정인 톱카프궁 보물창고는 보석으로 장식한 호화찬란한 공예품으로 가득했다. 제국의 통치자들이 이전 왕조의 작품에서 값비싼 보석을 빼내 새로운 장식품을 만드는 식으로 정치적 정통성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술탄 옥좌 위에 놓였던 보석 장식 드리개(높이 78㎝·18~19세기)는 붉은빛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곳곳에 박힌 루비 161개 때문이다. 에메랄드 80개, 터키석 37개, 다이아몬드 4개까지 더해 오스만 군주의 위엄을 자랑한다. 16세기 중국에서 수입한 백자에 보석 장식을 더한 사발(높이 12㎝)은 수입품에 오스만 고유의 예술을 더한 걸작이다. 석류 모양 금장식엔 에메랄드 15개를, 장미 모양엔 루비 23개를 박았다. 당시 중국 자기를 보석으로 장식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유행했다. 식탁에서 쓰는 국자도 예사롭지 않다. 통수정을 깎아 만든 국자(길이 27㎝, 폭 11㎝) 손잡이는 루비 10개, 에메랄드 8개로 장식했다.

제국의 사치는 전장에서 쓴 무기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551년 술레이만 1세가 쓴 칼엔 금장식과 함께 희귀한 검은 다이아몬드 11개가 날 양쪽에 박혀있다. 칼날 한쪽엔 코란 구절, 다른 쪽엔 '알라가 그에게 승리를 선사하길'이란 명문을 아랍어로 새겼다. 김세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유물 전시를 위해 라텍스 장갑을 끼고 칼을 만졌는데, 장갑이 찢어질 만큼 날이 예리하다"고 했다. 터키석과 루비로 장식하고, 금을 상감한 16세기 술탄의 투구는 당시 궁중 보석 세공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오스만제국은 17세기 들어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화려한 예술품과 건축물은 줄을 이었다. 오스만제국 연구자 이은정 서울대 교수는 "제국의 전성기가 지나고서도 화려한 사치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진 것은 군사·경제적 권력이 축소된 술탄들이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는 마지막 수단으로 사치품을 활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시 앞부분을 차지하는 고대 히타이트와 비잔틴 제국 유물이 빈약한 게 아쉽다. 하지만 대리석 조각 '꿈꾸는 에로스'나 '아테나와 기간테스의 전쟁' 부조, 그리스 시인 에우리피데스 조각은 알렉산더 대왕과 헬레니즘 세례를 받은 옛 터키의 과거를 헤아리기에 충분하다. 전시는 9월 2일까지, (02)2077-9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