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률만큼도 소득 안 늘어… 소비증가율 1%대

국내 소비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소비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이다.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서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소비가 위축되면 경기 부진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수출의존도를 높여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성장잠재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기 양극화를 확대시켜 업종 간·계층 간 소득 격차를 악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민간소비가 줄면 기업의 생산이 줄고 고용이 나빠져 가계소득이 감소하고 다시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기 침체에 빠진 민간소비

민간소비 증가율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해마다 경제성장률을 밑돌았는데, 2011년 4분기(10~12월)부터 1%대로 추락했다.

외환위기 이전인 1988~1997년의 10년간 연평균 소비증가율은 8.1%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8.0%를 웃돌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소비증가율과 성장률 간의 격차가 계속 벌어졌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1년의 4년 동안 연평균 소비증가율은 2.0%로 GDP증가율 3.1%보다 1.1%포인트나 낮아졌다.

소비증가율이 떨어지면서 국내총생산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의 민간소비 비중은 60.3%에 달했으나 2011년에는 51.2%로 낮아졌다. 민간소비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율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에는 53.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그 이후 계속 낮아져 지난해 4분기(9~12월)에는 17.1%로 추락했다.

◇소득은 줄고 빚은 늘어나는 가계 형편

민간소비가 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이 쓸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소득 증가율은 항상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이후 2011년까지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2%였으나 국민소득 증가율은 3.2%에 머물렀다. 열심히 일은 했지만 소비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이다. 물가를 감안한 가구당 월평균 실질 소득은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매년 1~2%대로 저조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가계 소득이 오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 수출과 내수 경기의 괴리(乖離)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더라도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교역조건이 이런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수출품 1단위로 구매할 수 있는 수입품의 양을 나타내주는 순상품교역조건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 나빠져 1995년 175.3에서 2011년에는 78.8로 추락했다. 이는 수출 상품의 단가는 하락하는 반면 수입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수출이 상당 부분 낮은 원화 가치에 의한 가격 경쟁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싸게 팔고 비싸게 사들이는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수입이 증가하지 않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소득 원천인 국내 고용 사정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자 증가율을 경제성장률로 나눈 고용탄성치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락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취업자가 늘지 않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전인 1984~1997년 기간에는 고용탄성치가 연평균 0.350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인 1998~2008년 사이에는 0.311로 낮아졌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2012년에는 0.290으로 더 크게 낮아졌다. 매년 늘어나는 신규취업자 대부분도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괜찮은 일자리는 아니다.

셋째, 소비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치마저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 변동이 극심하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동산 가치와 금융 저축, 주식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소득과 자산가치는 줄어드는데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공적(公的) 비(非)소비지출액도 늘어나고 있어 소비 여력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계부채는 통계가 처음 작성된 2002년에 464.7조원이었으나 2011년까지 연평균 7.8%씩 증가해 작년 말 912.9조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가계의 연평균 처분가능소득증가율 5.7%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가구당 평균 부채는 2011년 현재 3679만원으로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3283만원을 웃돈다.

가계 부채 대부분이 변동금리 방식이어서 금리 상승은 곧바로 이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준 금리 인상과 가계대출 금리 상승 등으로 2011년 가계의 이자 비용은 55조5000억원에 이르고, 이로 인한 실질 소비 감소는 34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더해 조기 퇴직과 노후 대책 등을 위한 연금과 사회 보험 비용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민간소비 부진 장기화될 듯… 해외소비자 유치 전략 등 발상 전환 필요

민간소비 부진은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원유와 부품소재 등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 구조가 단기간 내에 개선되기 어렵고,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해소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도 소비 부진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경기 부진과 노령화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일본처럼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욕구가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경기가 빨리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부동산발(發) 금융 위기를 완전히 털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유럽은 재정난을 극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 경기도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주도형인 경제 특성상 대외(對外) 경기 둔화는 국내 경기 회복 전망을 어둡게 한다. 민간소비의 장기 침체 현상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획기적이고 적극적인 내수 활성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외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통한 고용 증대가 시급하다. 또한 수요가 늘고 있는 의료, 관광, 사회서비스업과 같은 각종 내수 서비스 산업의 육성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해외 소비자들을 국내로 유치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내 대형 유통업을 보다 발전시켜 중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 지역 소비자들이 한국에 몰려들게 함으로써 한국을 '아시아 소비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민간소비를 바탕으로 내수 규모를 확대하지 못하고서는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