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무술 영화 '레이드' 찍은 英 청년 감독 가렛 에반스 친구들 수퍼맨 볼 때 성룡영화만 봐… 원빈, 나홍진 감독 등 한국에도 관심
1일 서울 용산구의 한 극장에서 가렛 에반스 감독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무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촬영장에서 바보같이 멀뚱히 서 있기 싫었다. 생동감 있는 액션 장면을 구상하기 위해 9개월 동안 직접 실랏을 배웠다”고 했다. /㈜코리아스크린 제공
영국 웨일스에 사는 다섯 살짜리 꼬마는 이소룡이 되겠다면서 흰색 조끼, 검은색 바지 차림에 검은색 슬리퍼까지 신고 다녔다. 일곱 살 땐 성룡이 맨밥에 감자만 먹는 영화 장면을 보고 저녁으로 맨밥과 감자만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소룡도, 성룡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무술 영화를 찍기로 했다. 지난해 토론토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세계의 무술영화팬들을 열광시킨 인도네시아 영화 '레이드'(17일 개봉·사진)의 가렛 에반스(32) 감독. 1일 서울 용산구의 한 극장에서 에반스 감독을 만났다.
'레이드'는 갱단의 보스 '타마'를 제거하기 위해 10여년 동안 경찰을 포함해 외부인의 공격을 단 한 차례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낡은 아파트 본거지에 잠입하는 경찰 특공대 정예요원들을 다뤘다.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마체테(날이 넓고 무거운 칼)와 인도네시아 전통무술 '실랏' 등으로 짜여진 액션 시퀀스가 록밴드 린킨 파크의 마이크 시노다가 만든 음악과 어우러져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피가 튀기고 살이 찢기는 영화를 찍은 에반스 감독은 동글동글하고 개구쟁이 소년과 같은 인상이었다.
에반스 감독은 "2007년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전통 무술인 실랏을 다룬 TV용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실랏을 이용한 극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실랏의 매력에 대해 그는 "가라데 같은 무술은 바삭바삭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깔끔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난장판 같은 싸움은 어울리지 않는다. 무슬림의 방어술에서 기원한 실랏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하는 실용적 무술이라 영화에 활용하기 좋다"고 했다. 그가 연출하고 실랏 챔피언 이코 우웨이스와 현지 배우들이 출연한 '메란타우'(2009)가 인도네시아에서 흥행하자 다음 작품인 '레이드'도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배우들과 촬영했다.
에반스 감독은 다섯 살 때 이소룡의 '용쟁호투'(1973)를 본 후부터 동양 무술 영화에 빠져들었다. 그는 "주말마다 아버지와 이소룡이나 성룡 등이 나온 아시아 무술 영화만 봤다. 성룡 주연의 '폴리스 스토리'만 해도 3일 동안 15번을 돌려봤을 정도"라고 했다. "친구들이 스파이더맨이나 수퍼맨 같은 미국 히어로에 빠져 있을 때 전 이소룡과 성룡, 이연걸 등이 나온 동양 무술영화에 열광했어요. 초자연적 능력 없이 맨몸으로 영웅이 될 수 있는 무술인들이 훨씬 멋있잖아요."
그는 "1970~80년대 홍콩 무술 영화에 나온 한국배우 황인식을 좋아해 다음 영화에 그와 비슷한 캐릭터를 넣고 싶다"고 할 정도로 한국영화와 한국배우에도 관심이 많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나온 원빈이 '아저씨'에서 액션배우로 나온 것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를 보고 나선 '나는 영화를 그만둬야 하나'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죠. 너무 압도적이었요." 에반스 감독은 "어릴 때 쿵후와 가라데 도장에도 다녀봤는데, 너무 못해서 무술인이 되지 못할 건 알았다. 무술을 못하면 무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도 되고 싶어서 영화에 뛰어들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