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건강 도시'에 살고 싶다

몇 년 전 공무원들과 함께 영국의 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였다. 시장의 브리핑 중 눈에 번쩍 띈 게 지역 주민들의 건강 상태였다. 흡연·음주·정신질환율 등을 전국 평균치와 비교하며 매년 흡연·음주율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건강 도시'를 지향한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주민들의 보건·건강 문제에 관심을 쏟는 단체장은 거의 없다. 주민들의 건강은 개인 문제라고 생각할 뿐,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는 단체장이 거의 없다. 그러나 지역의 건강 문제는 개인만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세계 3대 장수 마을로 꼽히던 일본 오키나와의 변화를 보면 명확하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오키나와를 '세계 장수 지역'으로 선정했다. 연중 내내 따뜻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해 주민들의 일상 운동량이 많았고, 섬에서 나는 고야(쓴 오이) 등 전통 식단을 먹고 사는 덕택이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이 파고들면서 2002년 평균 수명이 일본 47개 지방자치단체 중 26위로 밀려났고, 젊은 사람들의 질병률과 사망률이 높아졌다. 자동차 보급이 늘고 햄버거 등 식생활이 바뀌고 주민들의 운동량이 줄어들면서 생긴 변화로 비만율이 일본 내 1위였다. 비만은 각종 질병으로 이어져 당뇨병·간질환 사망률도 1위를 기록했다.

깨끗한 공기에 맑은 물을 자랑하는 제주도는 조선시대인 1577년 제주 목사가 30가구가 사는 해안 마을에서 100세가 넘은 노인 7명을 만났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장수 지역이다. 지금도 80세 이상이 전체 주민 7명 중 한 명꼴이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사는 기간인 건강 수명은 낮다. 평균 79.3세까지 살지만 아프면서 사는 기간이 9.7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제주의 흡연율·음주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고, 비만율도 전국 1위다. 관절염 환자도 전국에서 둘째로 많다. 당뇨병·고혈압 환자 치료율도 전국에서 가장 낮다.

전문가들은 장수 마을은 청정한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보건 제도 개선 움직임에 달려있다고 단언한다. 이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뇨병 환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울산, 심장 질환의 원인이 되는 고혈압 환자 비율이 가장 높은 충북은 고혈압 퇴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다행히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서 매년 시·도만이 아니라 시·군·구 건강 통계를 만들어 발표한다. 여기에는 흡연·음주율부터 하루에 30분씩 주 5회 이상 걷는 사람, 격렬한 신체 운동을 20분 이상씩 주 3일 실천한 사람 등의 자료를 공표한다. 이 자료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런 건강·보건 상태가 매년 얼마나 개선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자치단체는 이런 지역별 통계를 앞에 놓고 주민들의 건강 상태와 질병·영양 상태에 대해 주민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시·도, 시·군·구도 예산과 정책의 관심을 어디에 쏟는지를 주민들에게 매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정치에 매몰된 자치단체장이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과 복지를 생각하는 자치단체장을 만나고 싶은 것은 기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