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 "한국은 아이디어의 보물창고"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는 이제 한국 토종(로컬) 기업이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가 국내에 수입·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시 해외 법인으로 '역수출(逆輸出)'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지사가 본사 제품·서비스를 한국 시장에 맞게 개발·적용해 해외로 재(再)수출하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의 까다로운 기준이 한국을 전 세계 '테스트 베드(Test-Bed·시험대)'로 만들었다면, 이제는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서비스가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셈이다.

◇미국·유럽 본사로 재수출

미국 글로벌 엘리베이터 회사의 한국지사인 오티스엘리베이터 코리아는 영구자석 모터를 사용한 엘리베이터 장치를 미국 본사뿐 아니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영구자석 모터 장치는 엘리베이터 문을 작동하는 장치의 두께를 얇게 할 수 있고, 승강기 내부 천장을 높이고 소음도 줄일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다. 본사로부터 배운 기술을 응용·발전시켜 다시 본사에 판매하고 있는 것. 한국 오티스엘리베이터는 '기술 역수출'을 통해 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승강기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승강기 설치 대수 기준으로 세계 5위권에 들 정도로 큰 시장인 데다 소음과 승차감에 대해서도 상당히 민감하다"며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 기호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면 자연스럽게 기술 축적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한국필립스 역시 한국 주부들의 의견을 반영해 콩국수·두유 등을 만들기에 적합하도록 거름망을 단 '미니 믹서기'를 선보여 유럽 등 전 세계로 진출했다. 세계 최대 보안전문 기업인 ADT캡스의 한국지사는 한국 소비자의 높은 안전 욕구에 맞춰 개발한 CCTV·비상벨 서비스를 싱가포르와 호주 등에 판매 중이다. 총기 소지가 허용돼 보안 분야 선진국이라 불리는 해외 본사에서 한국법인의 제품을 채택해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라는 평가다.

◇한국화된 먹거리도 해외로 수출

도넛·아이스크림·피자 등 대표적인 외국 음식들이 한국인 입맛에 맞도록 재탄생된 뒤 해외 수출되는 경우도 늘었다. 한국피자헛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한 불고기 피자가 성공하자, 불갈비 피자·치즈크러스트 골드·리치골드 피자 등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역수출 중이다. 한국 배스킨라빈스는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사우디아라비아·말레이시아·중국 등 4개국과 아이스크림 케이크 50만개 수출계약을 맺었고, 던킨도너츠의 한국지사 역시 자체 개발한 '12곡라떼' 등을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서비스 허브

한국지멘스 헬스케어 부문은 지난달 26일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몽골 비즈니스 런칭 심포지엄'을 열고, 몽골 비즈니스 진출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2007년 몽골에 진출한 국내의 한 병원이 한국 지멘스 헬스케어 장비를 구매했는데, 높은 의료장비 가동률을 보이자, 현지 병원 경영자와 의료인들이 한국 지멘스를 의료 서비스 파트너로 선호했다는 것이다.

독일 지멘스는 전 세계 130여 개국에 진출한 전기·전자회사다. 글로벌 기업은 미개척 시장에 진출할 경우, 직접 그곳에 지사를 세우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근 해외지사에서 사업을 벌인다. 업계에서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중국 지멘스가 아니라 한국 지멘스가 직접 몽골에 진출한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지멘스 헬스케어 부문의 박현구 대표는 "비싼 의료장비를 도입하고도 관리 소홀 등으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몽골에서 한국 기업 특유의 신속하고 섬세한 서비스 유지와 관리 시스템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의 한국 투자법인인 홈플러스의 경우에도 국내 서비스 노하우를 영국으로 다시 수출했다. 감성적 구매와 편리한 서비스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푸드코트와 문화센터 등 고객 서비스 시설을 매장 내 핵심 공간인 1층에 두면서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을 유치하는 점을 영국 본사에서 벤치마킹해 10여개의 '테스코홈플러스' 매장을 운영 중이다.

연세대 경영대 장대련 교수는 "글로벌 해외기업의 한국지사는 단순히 발 빠르게 해외 제품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해 다시 해외로 뻗어가는 수출 기지 역할까지 하고 있다"며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시장 소비자들이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에 아이디어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