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황에 가계대출 연체율 5년만에 최고

지난달 17일 A은행 본점 로비에 번듯하게 차려입은 민원인 30여명이 몰려 왔다. 피켓 하나 들지 않고, 확성기도 없이 점잖게 은행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2010년 11월에 입주한 경기 지역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은 1년 반 동안 입주를 거부하며, 은행이 빌려준 중도금 대출 이자를 내지 않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 있었던 2008년 6억원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현재 시세가 4억8000만원 정도로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건설사가 이자를 은행에 대신 내줬지만, 형편이 어려워진 건설사는 올해부터 이자를 내 주지 않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이 민원인들을 연체자로 분류, 연체 이자를 물릴 수밖에 없다. 이 아파트의 2100가구 중 아직 500가구가 입주를 하지 않고 있어, A은행의 연체자는 이만큼 더 불어난 셈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이 같은 집단대출 연체율이 급증해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7일 금융감독원은 3월 말 기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0.71%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07년 3월(0.71%) 이후 최고치이며, 작년 말(0.60%)에 비해 0.1% 포인트 이상 오른 것이다.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64%로 나타났다. 작년 말 연체율(0.54%)보다 0.1% 포인트 올랐다. 금감원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공건설사와 분양계약자 사이에 소송전이 벌어지거나 집단 입주 거부 사태가 생기면서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이 올라간 것"이라며 "특히 경기 일산·용인 등 수도권 외곽 지역의 신규 아파트 집단대출 연체율이 높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아파트 집단대출 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98조원에 달해,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0%를 넘는다. 금감원은 지난 3월 말 집단대출 연체율이 1.8%로 작년 말(1.35%)보다 급증했다고 밝혔다. 아파트 집단대출은 시공사인 건설사가 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은데, 건설사가 어려워지면 부실 가능성이 덩달아 커진다. 또한 집값 하락에 따른 입주 거부도 연체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은행권 전체 부실채권 비율도 늘었다. 3월 말 부실채권 비율은 1.51%로 지난해 말(1.36%)보다 0.15% 포인트 상승했다. 부실채권 규모는 20조9000억원으로 같은 기간에 2조1000억원 증가했다. 집단대출 부실률 상승과 함께 조선업, 건설업체의 부실이 반영된 것이라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채권 비율은 9.09%로 전년 말(8.14%) 대비 0.95% 포인트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