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허물어지기 쉬운 건 사람, 이를 다독이는 것도 사람

자신이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인간은 가장 외롭고도 나약해질 수 있다. 핀란드 출신 클라우스 해로 감독의 '야곱 신부의 편지'는 그런 상태에 처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다움'을 버리지 않고서 삶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 두 번 이상 등장하는 인물은 단 세 사람이다. 편지를 읽어주는 여자와 답장을 하는 남자, 그리고 우체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된 레일라(카리나 하자드)는 눈이 보이지 않는 야곱 신부(헤이키 노우시아이넨)에게 온 편지를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야곱 신부는 삶의 고민을 적어 보내오는 이들의 편지에 답장을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지만 세상에 마음을 닫은 레일라는 이런 신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편지가 한 통도 오지 않자 야곱 신부는 실의에 빠지고 레일라는 그를 위해 편지를 쓴다.

영화는 적막하지만 메마르진 않다. 레일라가 편지를 읽어주는 장면을 제외하곤 대사가 많지 않고 호흡도 느린 편이다. 대신 그 여백을 잔잔한 음악과 핀란드 시골의 풍광이 메워준다. 배우들은 웃거나 울면서 호들갑스레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고, 묵직한 표정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슬픔이나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을 법한 마지막 장면에서도 해로 감독은 감정을 스크린 뒤로 꾹꾹 눌러 담았다.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대가로 그는 우아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난 이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반대였나 봐요.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나 봅니다."

더 이상 도움과 조언을 구하는 편지가 오지 않자 야곱 신부가 레일라에게 하는 말이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편지를 썼던 그 행위는 결국 외롭고 쓸모없어진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야곱 신부를 돕기 위해 나선 레일라도 스스로의 상처를 직시하고 세상에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은 기도와 신앙이 아니라, '사람'인 건지도 모른다. 10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것이 포인트!

#대사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길 바라고 우린 그들을 하느님께 다가가게 하죠. 하느님의 아들딸 중 누구도 쓸모없거나 잊히지 않았음을 사람들이 알고 느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야곱 신부가 레일라에게 하는 말)

#장면 편지가 더 이상 오지 않아 야곱 신부가 낙담하자 레일라가 우체부를 쫓아가 편지를 내놓으라며 윽박지르는 장면.

#해외평 ‘인간의 연약함과 믿음에 관한 탁월한 이야기’(버라이어티).

#이런 분 보세요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