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도 영화도 내 몸에 맞아야 스타일 살죠"

"시나리오를 보며 차기작을 고를 때는 물론이고 옷 한 벌을 꺼내 입을 때도, 남들 의견보단 내가 지금 어떤 것에 끌리는지, 무엇에 매혹되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남들이 정한 뻔한 틀을 따르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웃음)"

회색빛 눈동자 위로 장난기 섞인 웃음이 번졌다. 불혹을 넘겼지만 표정과 몸짓은 여전히 소년처럼 활기찼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화배우 이완 맥그리거(McGre gor·41). 그가 6일 밤 한국에 왔다. 신세계 백화점이 최근 그를 모델로 기용해 화보 촬영을 한 데 이어, 국내에서 영국 문화를 테마로 여는 전시·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초청한 것.

7일 오전 서울 조선호텔에서 만난 맥그리거는 "태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 여러 번 한국을 경유하긴 했지만, 공항을 벗어나 한국을 둘러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른 나라와 달리 소리 지르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사진 찍는 파파라치가 없는 게 인상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예의 바르면서도 친근한 느낌"이라고 했다.

―광고를 잘 찍지 않는 배우로 유명한데 이번은 의외다.

"맞다. 영화를 고를 때도 출연료나 흥행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 편이다. 사진 찍는 걸 그리 즐기지도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난 1990년대 후반 영국 문화의 수혜를 입으며 성장했다. 영화 '트레인스포팅'(1996)으로 주목받은 이후로 거침없고 재기 발랄한 영국 대중문화의 매력에 스스로도 푹 빠졌고, 또 그런 이미지로 지금까지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

―광고 촬영을 하는 건 배우가 아닌 '스타일 아이콘'으로 대중 앞에 선다는 의미가 있다. 느낌이 어떤가.

"아직은 좀 어색하다. 난 패션 잡지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고, 옷에 까다로운 사람도 아니다. 다만 뻔한 건 싫어한다. 이것저것 섞어 입으면서 개성을 찾으려고 애쓴다. 한 상표로 쫙 빼입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버버리 재킷을 골랐다면, 바지는 미국 디자이너 톰 포드(Ford)가 만든 걸 같이 입는 식이다."

―영화 작품도 '비기너스' '퍼펙트 센스' 같은 저예산 영화부터 '스타워즈' 같은 상업영화까지 다양한데.

"작품 속 이야기를 뜯어보고 나와 맞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출연한다. 촬영 여건, 출연료, 영화 예산, 흥행 요소 등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나와 접점이 있는지 살핀다. 옷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웃음)"

―마흔을 넘겼다. 나이 들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는지.

"가끔 깜짝 놀란다. TV 속 사람들 나이를 헤아려보다가 '맙소사, 저 사람이 나보다 어려?'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서 편하다. 딸만 넷인데, 요즘엔 아내와 딸들과 함께 산책하고 대화하면서 느릿느릿 하루를 보내는 게 참 즐겁다. 나이 들어가는 것의 좋은 점이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 평소 오토바이를 타고 오지를 여행하는 걸 즐긴다. 낯선 곳을 돌다 보면 이 지구 어디에서 만난 누구라도 배울 게 있고, 존경할 부분이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한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렇게 계속 묻고 탐색하는 사람이고 싶다."

―한국에 와서 해 보고 싶은 일은.

"경호원들이 말린다고 해도 서울 길거리를 마음대로 걸어보고 싶다. 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 음식 중에 비빔밥을 좋아한다. 꼭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