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에 식겁한 뭉칫돈 "이자보다 안전 우선"

"저축은행에서 1~2% 더 벌겠다고 맘 졸이느니 이자는 낮아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두 발 뻗고 지내려고요."(60대 주부 노모씨)

작년에 두 차례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에 이어 최근 업계 1위 솔로몬저축은행까지 영업정지를 당하자 저축은행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2010년 9월 76조원을 웃돌던 저축은행 수신고는 올 들어 55조원대까지 급감했다. 저축은행 이용에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은 안전하게 굴리면서 저축은행 예·적금 못지않은 수익도 챙길 수 있는 금융상품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특판예금 평소보다 곱절 팔려

김인응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센터장은 "예전 같으면 예금 이자가 1년에 3.9%라고 하면 코웃음을 쳤지만 지금은 그것도 감지덕지하며 돈을 맡긴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 가장 높은 금리(연 4.4%)를 줬던 KDB산업은행의 특판 정기예금은 저축은행 추가 영업정지를 전후해 뭉칫돈이 몰리면서 판매 한도인 2조5000억원이 소진돼 지난 6일 판매 종료됐다. 노재웅 KDB산업은행 팀장은 "원래 하루 평균 700억원 정도 팔렸는데 저축은행 퇴출 루머가 퍼진 지난주부터 평소보다 두 배씩 더 팔렸다"고 말했다. 이 은행의 창구에서 가입하는 특판 정기예금은 끝났지만,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폰으로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신규 고객은 1년 만기로 연 4.5%를 받을 수 있다.

◇절세 상품, 대체시장으로 부상

은행 예금 이자보다 수익이 높은 IBK기업은행의 채권(중금채)도 최근 석달간 1조원이 몰리면서 지난 3일 기준 개인 고객 가입액이 18조원대로 급증했다. 강우신 기업은행 강남PB센터장은 "신규 고객은 1년 만기에 5000만원 한도로 최고 연 4.6%까지 받을 수 있으며, 예금자보호 대상은 아니지만 국책 은행이 발행한 채권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사태로 새가슴이 된 일부 부유층은 보험사들의 연 5%대 저축보험에도 관심을 갖는다. 강지현 하나은행 골드클럽센터장은 "은행 이자도, 부동산도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정부의 과세 강화라도 피하려면 비과세 저축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낫겠다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며 "보험수수료를 떼여도 세금 혜택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인당 3000만원까지 세금을 1.4%(농특세)만 내면 되는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와 같은 상호금융권 조합 예탁금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 서울 A신협 관계자는 "어제 오늘 평소 예금액보다 2~3배 많은 자금이 유입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는 "각 상호금융 중앙회에서 원리금을 합쳐 1인당 5000만원까지는 예금지급을 보장해 주지만, 일부 회사들은 부실 저축은행만큼 경영 정보가 불투명해 거래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고객 놓고 각축전

이렇다 할 투자 대안을 찾지 못한 자금은 단기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서 머무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일 MMF 잔액은 72조원을 웃돌며 올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권사들은 이렇게 정처 없이 방황하는 자금을 잡기 위해 1~3개월 단기로 돈을 묶어두면서 MMF보다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저축은행 가지급금이 지급되는 10일부터 32일에 연 3.6%를 주는 환매조건부채권(RP)을 2000억원 한도로 선착순 판매한다. MMF에 1개월 돈을 넣어놔도 연 3%대 초반 수익만 받을 수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파격적인 금리다. 하나대투증권은 3개월에 최대 연 4.1%를 주는 단기 상품을 다음 달까지 판매한다. 원금보장형 파생상품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11일 1개월에 연 3.5~3.51% 수익을 제공하는 원금보장형 파생결합증권(DLS)을 판매한다. 임주혁 한화증권 르네상스지점 PB는 "1년 이상 장기자금의 경우엔, 신용등급 A등급 이상 우량 채권을 중도매매해서 최고 연 5.5%까지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 저축은행 예금의 대안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