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의 순수한 와인, 그 장인이 왔다

와인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은 봤을 일본 원작 만화 '신의 물방울' 9권의 한 에피소드에 "(여러 포도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와인"의 대표적 사례로 '클로 데 레아(Clos des Reas) 97년산'이 나온다. 이 와인의 2009년산은 국내에서 50만원 정도 한다. 프랑스 부르고뉴 본로마네(Vosne-Romanee) 마을에서 이 와인을 만드는 미셸 그로(Michel Gros·56)씨가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그의 5대조 할아버지인 알퐁스가 '클로 데 레아'를 사들여 첫 와인을 출시한 지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걸 홍보하기 위해서다.

본로마네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도 가장 값비싼 고급 와인을 만드는 마을로 유명하다. 그로(Gros) 가문은 6대에 걸쳐 이 마을에서 와인을 생산해온 '와인 명가'이다. 1930년대 와인업을 시작한 알퐁스 그로의 자손들이 4개 도멘(domaine·와인양조장)을 각각 운영하며 다양한 와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국 유명 와인평론가 클라이브 코츠(Coates)는 그로 가문을 "(부르고뉴 와인의) 왕조(dynasty)"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로 가문의 장자(長子)이자 현재 클로 데 레아를 맡고 있는 미셸 그로는 햇볕에 그을린 검붉은 얼굴과 크고 투박한 손이 왕족보단 농부에 가까웠다. 그는 "포도밭에 나가 있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대부분 시간을 포도밭에서 보낸다"고 했다. 단지 즐거움 때문만은 아니다. "와인의 맛, 품질은 80%가 포도밭에서 결정됩니다. 양조장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20%나 될까요?"

부르고뉴 와인은 보르도 등 다른 와인산지와 달리 블렌딩(blending)을 하지 않는다. 피노누아 한 포도 품종만으로 와인을 만든다. 그럼에도 같은 마을, 심지어 마을보다 더 작은 단위인 같은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포도를 가지고도 도멘마다 맛이 확연히 다른 와인을 만들어낸다.

"부르고뉴 와인생산자들은 고집이 셉니다.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입을 기쁘게 하는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쩌면 이기적이랄 수도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요. 자신의 와인양조 방식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포도를 조금 일찍 수확하기도 하고, 포도 알만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도줄기까지 함께 넣고 와인을 만들기도 합니다." 미셸의 남동생 베르나르가 작은아버지와 고모를 대신해 운영하는 '도멘 그로 프레르&쇠르'도 '신의 물방울'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2001년산 와인을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등급을 낮춰 싸게 판매했던 일화가 만화에 소개됐던 것. 미셸은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면서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자존심"이라고 했다.

그에게 '위대한 와인과 훌륭한 와인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훌륭한 와인은 맛과 향과 색이 좋지요. 위대한 와인은 마시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에 따라서 친구가 될지 말지를 결정하듯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