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의 빛은 희망

스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의자와 함께 즐겨 도전하는 분야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기술과 창의력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고, 잘만 만들면 일상에서 함께 하는 '불멸의 디자인'으로 남을 수 있는 아이템, 조명이다. 1958년 탄생한 이탈리아 명품 조명 브랜드 '아르테미데'는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참여시켜 조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지렛대 역할을 한 브랜드다. 노먼 포스터(런던 시청사 설계), 헤르조그&드 뮈론(베이징올림픽 주 경기장 건축가) 같은 건축가와 카림 라시드, 로스 러브그로브 같은 디자이너를 작은 조명으로 불러들여 조명 디자인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지붕에 미사일을 떨어뜨리는 대신 천장에 조명을 터뜨려보자 생각했지요. 전쟁 직후 암울한 시절이라 사람들이 미사일은 원하지 않더라고요. 밝은 기운을 내려주는 빛나는 '희망의 미사일'을 천장에 장착한 거죠.(웃음)"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의 몬테 나폴레오네 지역에 있는 아르테미데 쇼룸에서 만난 에르네스토 지스몬디(Gismondi·81) 아르테미데 회장은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대학에서 우주공학과 미사일을 전공한 그는 건축가인 친구 세르지오 마짜와 아르테미데를 설립해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80년대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디자인 운동인 '멤피스(Memphis)'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디자인 산업을 이끌어온 핵심 인사이기도 하다.

그는 조명과 디자인을 결합한 이유를 시대적 배경에서 찾았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50년대 이탈리아엔 희망의 불씨가 될 간단하면서도 새로운 사물들이 필요했어요. 당시엔 건축가들도 일감이 별로 없었죠. 그래서 지오 폰티 같은 건축가들과 새 주거 환경에 맞는 혁신적인 조명을 만들기 시작했답니다." 이후 아르테미데는 할로겐 조명을 처음 적용한 조명 '티지오', 기능주의 미학을 보여준 '톨로메오' 등 조명의 아이콘을 선보여왔다.

지스몬디 회장은 "우리는 조명기구(lamp)를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빛(light)을 디자인한다"고 했다. "빛은 공간을 보여주고, 공간을 창조합니다. 공기, 물처럼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고요." 옆에 있던 그의 아내이자 유명 디자이너인 칼로타 드 베빌라쿠아가 거들었다. "다양한 공간과 삶의 지형에서 개인에게 필요한 빛을 만드는 것이 목표랍니다. 빛과 사람의 관계 만들기. 우리의 '휴먼 라이트(Human light)' 철학입니다."

아르테미데 역시 다른 명품 회사처럼 불법 복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백만원이 넘는 제품이 거의 그대로 복제돼 몇십만원에 팔린다. 하지만 지스몬디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중국에 매장이 6개 있는데 제품이 팔리지 않아요. 다들 복제품을 사니까. 복제품을 사는 부류는 우리 제품의 소비 계층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해주는 소비자들에게만 충실할 뿐입니다."

한국을 두 번 방문했다는 그는 '한국의 빛'에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빛이 필요하면 그저 빛을 붙여놓는 것 같은 인상이 들었습니다. 조형적인 요소나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조명을 불을 밝히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는 "한국 디자이너 한 명과 제품 개발을 논의하다 무산됐다"며 "훌륭한 디자인 감각을 지닌 한국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