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야? 지방 주택은 촌스럽다는 편견 깼다

서울과 경기도 판교 등을 중심으로 개성 있고 세련된 외관의 집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지방은 그런 면에서 예외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도 대부분 동네 '허가방'(부동산 인·허가를 대신해주는 곳)에서 찍어내는 비슷비슷한 모양의 '집장사' 주택 설계도면을 가져다 그대로 짓는다. 박공 지붕(삼각형 모양)에 붉은 벽돌 외벽, 1층과 2층을 균일한 크기로 올린 집들….

윤재민(41·JMY건축사사무소 대표)씨가 최근 광주광역시에 설계한 집도 그런 식으로 지어질 뻔한 집이다. 광주토박이인 건축주 송은희(40)씨는 결혼 후 11년간 살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하면서 직접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그가 집을 짓기로 한 목적은 단 하나. "11살, 9살 난 초등학생 두 딸의 뛰어노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광주 택지지구를 돌아다니며 다른 집들을 돌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예쁘다'는 주택을 죄다 찾아봤지만 마음에 쏙 드는 모델이 없었다고 한다. '정보 부족'과 '서울과의 거리감'은 건축가를 찾고자 하는 지방 주민에게 상당히 높은 벽이다. "답답한 마음에 아는 사람 집을 시공해준 시공업체를 무작정 찾아갔어요. '예쁜 집을 갖고 싶다, 그런데 흔한 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만 했죠. 운이 좋았던지 건축가 한 분을 소개받았어요."

그렇게 연이 닿은 건축가가 윤재민씨다. 15여년간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2008년 고향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김해·광주 등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다.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윤씨는 "지방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최신 정보가 부족하고 주변에도 새로운 집을 짓는 시도가 별로 없다"며 "새집을 짓는 두려움 자체를 해소하게 할 목적으로 극적으로 모던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집을 지었다"고 했다. 연면적 198㎡(약 60평). 평당 공사비는 500만원 정도다.

이 집의 가장 큰 외형적 특징은 '캔틸레버(cantilever)'라 불리는 구조물이다. 1층 공간 없이 홀로 쭉 뻗어나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2층 공간으로 통상 디자인적인 외관을 중시하는 갤러리·카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방식이다. 윤씨는 "지형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구조물을 썼다"고 했다. "건축주가 '땅이 충분히 넓지 않다. 하지만 마당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만든 캔틸레버 아래는 마당이고, 위는 자녀들 방이다. 공간을 띄웠기 때문에 자녀들 방에 들어가면 마치 하늘에 붕 떠있는 듯한 재미있는 느낌을 받는다. 건축가는 창문 쪽 단면의 일부를 집 앞 연못 '연꽃방통'(연못 이름) 쪽을 향해 비스듬히 꺾었다. 자연적인 경관을 최대한 방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다.

'지방 주택은 촌스럽다'는 편견을 반박하기 위한 서구식 공간도 눈에 띈다. 1층 주방에 바(bar) 형태의 높은 탁자와 의자를 두고, 10여평 남짓한 마당 앞 목재 발코니 바닥에 여닫이식 수영장을 만든 것이다. 여름에는 이 바닥 문을 열어 아이들 수영장으로 쓰고, 다른 계절에는 닫아 마당으로 쓰는 식이다. 주방 바 의자에서는 동네 주민들과 차나 와인을 마신다. 콘크리트 위에 하얗게 칠한 외벽도 현대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한 장치다. 이 집을 둘러본 광주지역 건축가들은 "여기에 이 집이 가장 먼저 들어섰다면 다른 주택들 모습도 좀 달라졌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지난 1월 입주한 송씨 집에는 새 식구가 둘이나 늘었다. 아파트에서 키우던 개 '까미' '미니' 외에, 무등산 주말농장에서 키우던 커다란 풍산개 '세리'와 길고양이 '알리'다.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이사하자마자 두 '식구'들을 데리고 왔다. 천방지축 두 딸에, 개·고양이까지 정신없을 법도 하지만 송씨는 "잔소리가 부쩍 줄었다"고 한다. "전에 (아파트 살 땐) 애들에게 '뒤꿈치 들고 다녀!'란 소리만 했어요. 근데 지금은 마음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여유로워졌다고 해야 하나….(웃음)" 건축가는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는 사람의 삶을 바꿔놓는 변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