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 묻어놨던 '한국의 고건축' 사진집 복간

1976년 서른셋의 혈기왕성한 건축가가 건축연구소를 열었다. 좋은 책으로 건축을 알리겠다며 출판사 등록까지 마친 그는 호기롭게 '한국의 고건축' 50권 시리즈를 기획한다. 당대 최고 사진가인 고(故) 임응식 선생과 작업해 1권 '비원(秘苑)'을 시작으로 경복궁, 종묘, 소쇄원 등을 흑백사진집에 담았다. 하지만 출판사 재정은 금세 바닥났고 빚더미에 앉은 그는 7권 '수원성'을 끝으로 뜻을 접어야 했다. 책은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36년이 흘러 이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건축가가 그때 사진집을 복간했다. 김원(69) 도서출판 광장 대표는 "50권을 다 못 낸 마음의 빚을 죽기 전에 꼭 갚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일곱 권을 그대로 복간하기로 결정했다"며 사진집을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가 편집·영인·제작 등 복간 작업을 도맡았다. 김 대표는 "이 사진집 세트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임응식 선생님에 대한 오마주(존경)이자 내 젊은 시절의 열정과 깡다구,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한 미진한 노력에 대한 연민의 오마주"라고 했다.

복간된 작품집은 사진은 물론 그가 직접 쓴 텍스트도 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 "사실 제가 썼지만 이제 와서 보니 내용이 틀린 게 있어서 바로잡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비원의 각도가 정확하지 않고 약간 삐딱한 이유를 그때는 그저 풍류나 멋, 파격이라고 봤는데, 이제 와 종합적으로 보니 필연적으로 그렇게 돼야 할 이유가 있더라고요. 자연의 치세가 그렇다거나 그런 각도여야 시선이 어느 곳에 고정된다든가 하는 이유가 있는데 젊었을 땐 그게 안 보였어요. 하지만 함께 작업한 사진가 주명덕, 강운구 선생과 이기웅 대표가 옛날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말리더군요. 후배 건축가들에게 김원이가 당시에 못 봤던 걸 찾아내는 기회도 주고, 30대에 몰랐던 걸 비판도 받아야 된다면서.(웃음)"

'한국의 고건축'은 36년 전으로선 획기적인 문화 상품. 권마다 25~35컷이 시원하게 실린 흑백사진에선 고졸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당시만 해도 우리 전통 건축이 관심 대상조차 되지 못하던 시절. 김 대표는 "소쇄원을 찍을 때는 사무실 직원 15명을 총동원해 4박 5일 합숙훈련하며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실측 도면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내설악 너와집은 이제 모두 철거됐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어 더 값지다"고 했다.

"저는 건축과 도시에 관한 잘못된 생각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확신해요.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한국 고건축에 있습니다. 자연 훼손과 건축 공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 이번 사진집에 그 기본 정신이 담겨 있어요." 김 대표는 10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서 지인 50여명을 초청해 복간 기념 와인 파티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