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37] '목깐통'서 수건 빨다 싸움 붙어

이 땅에 대중목욕탕이 나타난 건 1920년대 들어서다. 신체 노출을 금기시한 유교문화 등의 영향으로 조선의 목욕문화는 발달하지 않았다. 최초의 공중목욕탕이 1924년 평양에 등장했다는 기록이 여럿 있으나 조선일보를 보면 이미 1920년 12월 평양에 '공설목욕장'이 준공되어 1921년 1월 1일부터 영업 개시한다는 기사가 있다. 요금은 13세 이상은 5전(약 1000원), 12세 이하는 2전(400원)이었다.(1920년 12월 27일자) 1921년 2월 종로 공평동의 목욕탕에서 옷 절도사건이 일어났다는 보도로 보아 서울에도 일찍부터 목욕탕이 있었다.(1921년 2월 5일자)

첫선을 보인 대중목욕탕의 인기는 높았다. 평양 공설목욕탕에는 '매일 목욕하는 자가 사오백명'이나 됐으며 '그 5할가량은 조선 부인네들'이었다.(1921년 2월 15일자) 손님이 탕 안에서 수건을 빨다가 물값을 아까워한 주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까지 가는 사건이 신문 사회면을 차지하기도 했다.(1924년 11월 19일자) 초창기엔 목욕탕에 오는 아이들은 '무슨 검은 껍질 하나를 뒤집어쓴 것가치 때가 덕지덕지'한 모습이었으나 1930년대 중반에 이르자 '조선 아이들도 이제는 제 몸에 물을 줄 줄 알게'됐다고 어느 목욕탕 주인은 표현했다.(1934년 1월 2일자)

하지만 남남끼리 벌거벗고 한공간에서 몸을 씻는 대중탕에 대해 많은 '조선인'들은 낯설어했다. '혹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병이 옮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신문 기사에서도 '목깐통(목욕탕) 안이 전염병과 기생충을 퍼트리는 곳'이라고 했고 (1939년 4월 5일자), 탕에 들어가면 남들이 쓰던 의자나 대야 등을 말짱히 닦은 다음에 쓰라고 충고하며, 잘못하면 목욕탕에서 성병이 옮을 수도 있다고 했다.(1940년 3월 23일자) 유길준(兪吉濬)의 조카인 여성운동가 유각경(兪珏卿)은 인터뷰를 통해 "잡탕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목욕을 하는 것은 위생상 큰 해독을 끼칠 경우가 만흔데, 더구나 화류계의 여자들이 태반이나 출입을 하니까 그들과 석겨서 어린애를 데리고 목욕을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하다며 여탕은 한 사람씩 목욕하는 독탕(獨湯)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폈다.(1928년 12월 20일자)

이런 우려 속에서도 목욕탕 애호가들은 늘어갔다. 소설가 안회남(安懷南)은 "산곡(山谷)이나 해변 피서지에 가서 땀 안 흘리고 뚱뚱해지는 것보다는 도회의 목욕탕 속에서 땀 흘리고 단련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피서"라며 예찬론을 폈다.(1938년 8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