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돛 펴고 기다린다… 잔잔한 봄의 움직임

"우우웅~."

엔진이 크게 운다. 하얀색 요트가 마른 풀빛의 강물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강 중간에 닿자 스키퍼(전문 운항사)가 엔진을 끈다. 그가 운전석 앞 밧줄 더미로 다가가 가운데 밧줄을 힘껏 당긴다. 하얀색 돛이 머리 위로 펼쳐진다. 강물을 지나는 바람을 떠안자 요염한 여인처럼 돛의 허리가 구부러진다. 바람이 요트를 밀어낸다.

5월은 '선유락(船遊樂)'을 만끽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바람은 차지 않고, 햇살은 적당히 따사롭다.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에서도 이 선유락을 즐길 수 있다.

◇바람을 기다리는 배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2009년 방송됐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윤지후(김현중)가 했던 대사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편 한강 둔치에 있는 '서울 마리나 클럽&요트'를 가본 뒤에야 이 말을 이해했다.

요트는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돛을 펴고 바람이 밀어주기를 기다리는 배다. 이 때문에 속도가 빠르지 않다. 8명 정도가 타는 27피트 요트가 한강에서 바람을 세게 받았을 때 시속 10㎞ 정도라고 한다. 12년 경력 스키퍼 고현암(26)씨는 "요트는 바람과 균형을 즐기는 것"이라며 "스피드를 원하면 보트를 타러 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배 위에서 맞는 바람은 옛날부터 문인들의 표현욕에 불을 지폈다. 중국 북송 때 시인 소동파도 불후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적벽부'에서 이렇게 썼다.

조각배 제 가는 대로(縱一葦之所如)

아득한 물결을 헤친다(凌萬頃之茫然)

넓은 허공에 의지해 바람을 부리니(浩浩乎如憑虛御風)

그 멈출 곳을 알지 못하네(而不知其所止)

훨훨 나부끼며 세상을 떠나(飄飄乎如遺世獨立)

신선으로 날아오르는 듯하다(羽化而登仙)

소동파를 떠올리며 요트 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선선한 봄바람이 귓불을 때리고 지나갔다. 따스한 햇볕은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균형의 미학을 담은 배

신기하게도 요트는 40~50도 정도 기울어져도 뒤집어지지 않는다. 요트 밑바닥에 '킬(Keel)'이라는 추가 있기 때문이다. 지느러미처럼 생긴 이 추가 물속 깊숙이 잠겨 바람이 세게 불어도 배가 밀리지 않고 균형을 잡게 해준다. 이 킬을 믿고 너울거리는 물살 위에서 최대한 균형을 잡는 게 요트 타는 재미다. 요트를 거의 옆으로 누운 것처럼 기울였다 다시 세우는 묘기는 요트를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기술이다.

요트는 배를 움직이는 방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파워 요트는 모터 동력을 이용하고, 세일링 요트는 바람 힘을 빌린다. 노를 젓는 것은 노잉 요트다. 이중 세일링 요트에서도 완전히 바람만 이용하는 것은 1인용 소형 요트인 딩기 요트다. 6~8인용 크루즈 요트는 바람의 힘을 빌리지만, 입·출항 때는 5~10마력의 보조 엔진을 사용한다. 특히 크루즈 요트는 샤워시설, 화장실, 수면실, 조리대 등이 있어 장거리 요트 여행을 즐기기에 좋다. 크루즈 요트에 오르면 돛대 위에 손바닥만한 화살표를 볼 수 있다. '풍향포'라는 것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가리켜준다.

지상 건물에선 카페와 레스토랑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마리나 건물 1층에 있는 ‘카페 브리즈(Cafe Breeze)’ 실외 테이블에선 주변에 정박한 요트를 배경으로 이탈리아풍의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매주 목~일요일 오후 5시 30분~10시까지 야외B바비큐도 운영한다. 건물 3층 ‘마리나 루’에선 퓨전 일식요리를 맛볼 수 있고, 4층 ‘타파스 바 루’에선 한강을 조망하며 와인을 즐길 수 있다. (02)3780-8400, www.seoul-marina.com

◇요트, 빌려서 타면 된다

요트 한 대 가격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한다. 그래서 요트는 "호사스러운 취미"고 요트를 타는 사람은 "돈이 넘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요트를 빌려서 타는 것은 저렴하다. 서울 마리나에서 4000원을 내면 딩기 요트를 1시간 이용할 수 있고, 1만5000원이면 크루즈 요트를 탈 수 있다. 1시간 동안 요트를 이용하면 당산철교와 서강대교 사이를 왕복하며 여의도와 밤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오전 11시와 1시 2만8000~3만원을 내고 요트와 브런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파라다이스티앤엘 요트+브런치'(예약 문의 02-2260-2023)도 마련되어 있다.

한강에서요트타기 Tip.

‘서울 마리나’에선 파워 요트, 비즈니스 보트 등도 임차해 이용할 수 있다. 관광 및 레포츠용인 파워 요트는 모터의 동력을 이용해 속도가 빠르다. 9~12인승으로 배 한 척을 한 시간 빌리는 비용은 60만원이다. 비즈 보트는 내부에 쇼파와 6개의 테이블 등이 있어 가족 파티나 선상 회의에 사용할 수 있다. 최대 28명까지 탈 수 있고 1시간 임차료는 33만6000원.

서울 마리나에선 딩기 요트와 크루즈 요트 운항을 배울 수 있는 ‘서울 세일링 아카데미’도 운영한다. 초·중·고급 등 수준별로 운영되며, 수강료는 시간당 1만~1만2000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