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이 사람과] 이한철, 묵직해졌다

싱어송라이터 이한철(40)이 이번 주 3년 4개월 만에 새 앨범 '작은 방'을 발표한다는 소식에, '이번엔 또 어떤 신나는 노래가 나올까' 기대한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곡 '슈퍼스타' '데스티니' '바티스투타' 등 그의 많은 전작(前作)들이 지친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희망가'였기 때문. 하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잔잔하고 무게감 있는 노래 여섯 곡이 든 꾸러미를 풀어놨다.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한철은 특유의 경상도 소년 같은 말투로 "와, 음악 색깔 바꾸는 게 정말 쉽지 않네요"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저조차 365일 늘 즐거운 기분이 아닌데, 밝은 노래들만 부른다는 게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흥겨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었던 게 아닐까 고민했죠."

그렇게 고민하며 1년여 동안 작업한 앨범 '작은 방'에선 이한철 특유의 흥겹고 밝은 리듬이 사라졌다. 통기타 선율에 이별의 짧은 순간을 노래한 '사랑', 못생긴 여성의 서글픔을 다룬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초여름의 싱그러움보다는 늦가을의 서정이 짙게 묻어나는 노래들로 가득하다.

숱한 무대에서 '괜찮아 잘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슈퍼스타)라고 흥을 돋우던 이한철은 신곡 '올드보이'에선 '사막같이 거칠어진 피부, 깊게 패인 주름살의 이마, 거울 앞에 서 있는 저 남자가 바로 나란 말인가'라며 나이듦을 한탄한다.

1993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동상, 1994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뒤, 음악인생 20년을 코앞에 둔 이한철. 데뷔 초기 지상파 인기 시트콤에 출연하는 등 한때 '청춘스타'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소박한 공연장에서 오랜 시간 팬들과 호흡해온 가수·작곡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2006년 발표한 '슈퍼스타'는 CM송·응원곡 등으로 생활 속으로 파고들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아직도 방송·외부 공연 때는 '슈퍼스타'는 꼭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죠. 멀뚱멀뚱하던 분들도 후렴구에서 마이크를 객석으로 향하면 다 따라 하시거든요. '괜찮아 다 잘될 거야~'(웃음) 물론 다른 노래들도 따라 불러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팬들과 가족이나 친구처럼 살갑게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이한철은 지난 어린이날에는 30여명의 팬들과 서울 올림픽공원으로 소풍을 떠나 길거리 공연도 펼쳤다. 다음 달에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사연을 공모, 뽑힌 관객 8명을 집으로 초대해 작업실을 보여주고 공연하는 '작은 방 콘서트'도 연다.

이제 마흔 살이 된 그는 "물길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 했다. "(영국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인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 재작년과 작년 두 번이나 갔어요.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잔지바르로 향하는 배가 정말 멋져요. 물길을 헤쳐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물길에 몸을 맡기듯 움직이거든요. 남과 겨루지 않고, 그저 내 갈길만 묵묵히…. 모든 사람들이 이 배처럼 살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에 바로 기타를 꺼내 곡(새 앨범 수록곡 '흘러간다')도 썼죠. 앞으로도 물길 흘러가듯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고 싶어요. 그래야 듣는 분들에게도 더욱 울림이 깊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