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가사·엽기 분장… 가요계 'B급'이 접수하마

분홍색 물방울무늬가 돋보이는 형광색 턱시도를 입은 세 명의 남성이 "고(Go) 리듬 고 리듬 고"를 외치며 무대를 뛰어다닌다. "손 머리, 또 허리, 앞, 앞으로나란히"라는 노랫말을 흥겹게 부르며 능글맞은 표정을 짓던 이들은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의 무대를 선보였다. 지난 11일 KBS 2TV 가요프로그램 뮤직뱅크에 출연한 3인조 힙합그룹 '리듬파워'다.

최근 이같이 엽기적인 분장, 재미있으면서도 친숙하지만 약간 '저급'인 가사, 독특한 뮤직비디오 등 'B급 정서'로 가요계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뮤지션들이 늘고 있다.

얼마 전 싱글앨범 '여자 사람'을 발표하고 컴백한 남성듀오 '노라조'는 영화 '레옹'을 패러디한 분장으로 활동 중이다. 노라조의 멤버 조빈은 영화 속 레옹처럼 빨간 장미꽃이 담긴 화분을 들고 노래하고, 멤버 이혁은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했던 소녀 마틸다처럼 단발머리를 하고 기타를 친다.

그룹 리듬파워는 1980년대 홍콩 무협영화를 배경으로 우스꽝스러운 무술을 하며 악당에게 납치된 외국인 미녀를 구출한다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시선을 끌었다. 이들은 뮤직비디오에서 자신들의 곡명인 '리듬파워'를 '박자기력(拍子技力)'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힙합 듀오 배치기도 오락게임 콘셉트를 차용해 신곡 '두 마리'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자신들이 게임 캐릭터로 변신해 첫사랑의 마음을 얻기 위한 싸움을 한다는 식이다. KBS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탑밴드2'에서 주목받은 그룹 '장미여관'의 노래 '봉숙이'는 "여관에서 30분만 쉬었다 가자" 등의 '19세 미만 청취 금지'급 가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가사와 안무, 뮤직비디오 등이 B급 정서를 바탕으로 했다 해서 음악 자체가 'B급'은 아니다. 그룹 배치기의 멤버 무웅은 "우리 음악은 '뽕끼'에 기반을 두고 듣기에 부담없는 음악이지만, 결코 그 안의 메시지가 가볍지는 않다"고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최근 유머코드 등을 담아 B급 정서를 내세우는 노래들은 음악적 완성도도 높다"며 "결국 대중은 B급 정서라는 포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음악적 퀄리티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뭔가 촌스럽고 덜떨어진 것 같지만 재미있는 B급 정서는 대중에게 신선하다는 인상을 준다"며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가 이러한 감성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가수들도 기존 흐름과는 다른 가사나 퍼포먼스를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마케팅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