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의 추락

8년 만에 이사를 했다. 문화부 기자에게 이삿짐 최대의 골칫거리는 책이다. 책장은 물론, 방안 빈틈마다 마치 주인인 양 탑을 쌓은 '녀석'들 상당수를 작정하고 처분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은 켜켜이 쌓인 먼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겉장을 들출 때마다 잊고 있었던 추억이 하나 둘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20여년 전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산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버스비도 빠듯하던 형편이라 대부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해결했던 시절이었다. 사고 싶었던 책은 학교 앞 서점에서 실물을 확인한 뒤에도 몇 번씩 고민하다 지갑을 열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책은 추억과 함께 이번에도 한 번 더 살아남았다.

최근 인문고전을 전문적으로 펴내는 출판사 서해문집의 김흥식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출판계 불황에 관한 대화였지만, 책이 안 팔리고 동네 서점이 줄어들고 있다는 식상한 주제는 아니었다. 이른바 출판유통시장을 천하통일할 기세였던 인터넷 서점의 정체와 부진에 관한 이야기였다. 올해 인터넷 서점이 첫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보다 더 심각한 점은 팔리는 책의 종수가 현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가령 작년까지는 인터넷 서점에서 하루에 40여 종 100권이 판매됐다면, 올해는 똑같이 하루 100권 판매라고 하더라도 20여 종에 불과하다고 했다.

독자가 책을 구입하는 방법은 결국 둘 중 하나다. 자신이 직접 실물(實物)을 보고 결정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는 경우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방법이 모두 위기다. 우선 실물의 경우다. 김 대표가 출판을 시작하던 1989년에 비해 지금 전국 서점의 숫자는 3분의 1 토막난 2000개 수준이다. 창업 당시 김 대표는 인문서 초판을 1500~2000부 찍었는데, 지금은 600~800부를 찍는다. 단순히 책이 팔리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책을 더 찍고 싶어도 전시하고 진열할 서점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는 경우다. 오프라인 서점이 줄어들면서 이 자리를 꿰찬 게 인터넷 서점이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의 초기 화면 책들은 독자의 상식이나 통념과는 달리 배치된다. 광고비를 내거나 이벤트를 벌이는 출판사 책들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인터넷 서점 초창기에는 신문 서평 등 외부 전문가 추천 도서들이 초기 화면을 채웠지만 인터넷 서점의 수익구조가 악화되면서 예의와 염치를 잃었고, 그렇게 해서 점점 신뢰까지 잃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중고책을 거래하는 오프라인 서점을 서울 종로와 신촌 등에 열어서 화제가 됐다. 물론 일각에서는 인터넷 서점의 할인판매를 확대하고 공식화하려는 수단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책의 실물을 직접 만지고 판단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환영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돈을 주고 산 책만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직접 실물을 보고 결정한 책이 영혼을 더 오랫동안, 그리고 풍성하게 살찌우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물성(物性)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