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 정찰제

시인 김종삼에게 어느날 누군가 물었다. 시인이 뭐냐고. 김종삼은 대답을 못한 채 어슬렁거리다 남대문시장에 가서 빈대떡을 사먹었다. 그는 시장 상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시구를 떠올렸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끝나는 시 '어느날 나에게 물었다'를 남대문 상인들에게 바쳤다.

▶노점상 용어에 '다다구리'라는 게 있다. "골라 골라"를 외치며 2박자 장단에 맞춰 다닥다닥 발을 구르고 쿵짝쿵짝 손뼉을 쳐 호객하는 몸짓이다. 어원은 분명치 않지만 남대문시장 노점상들이 첫선을 보여 전국에 퍼졌다고 한다. '다다구리'는 외국인 관광객이 보기에 한국인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됐다.

▶"남대문만 빼고 다 판다" "남대문에 없으면 서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대문시장은 '요지경 세상'이다. 1만개 넘는 온갖 가게를 하루 평균 40만명이 찾는다. 사람이 몸에 걸치고 쓰고 치장하는 갖가지 잡화, 집에 갖춰야 할 별의별 생활용품을 백화점보다 싼값에 사고판다. 출출한 배를 채울 팔도(八道) 맛집도 골목 안 곳곳에 숨듯 들어앉았다. 소설가 정소성은 "갈치조림은 꼭 남대문시장에 가서 먹는다"고 했다. 소설가 성석제는 닭곰탕집 단골이라고 했다.

▶남대문시장은 물건 값이 워낙 싸지만 손님들 입에선 으레 "비싸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야 가게 주인이 더 깎아주고 '덤'까지 얹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네 '흥정 문화'는 이제 외국인에게도 익숙하다. 얼마 전 서울시가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가는 곳을 조사했더니 명동과 동대문시장에 이어 남대문시장이 꼽혔다. 일본인 관광객 중에 60%는 남대문에서 쇼핑을 한다. 남대문시장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자 몇몇 상인이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벌어져 나라 망신을 시키기도 한다. 지난 2월엔 일본인 관광객이 시장 주변 포장마차에서 김치전 한 장과 맥주 두 병을 먹었다가 5만원을 치른 일도 있었다.

▶서울시가 7월부터 남대문시장에서 정찰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상인들은 "바람직하지만 소품에 일일이 가격표를 붙이긴 힘들다"고 말한다. 가격표를 붙여놓아도 외국인들이 더 깎으려 들 거라고 걱정한다. 그래도 몇몇 악덕 상인들의 바가지 상술 때문에 시장 전체가 욕바가지를 쓰는 것보다는 낫다. 1973년 추석, 남대문 상인들은 '부드러운 흥정 속에 번영이 싹튼다'는 구호를 내건 적이 있다. 장터에서 오가는 흥정은 삶의 의욕을 일깨우는 소리다. 남대문시장에서 구수한 흥정 소리가 사라지게 된다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