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특허만 15개… 중학교·고등학교만 나와서 어떻게 14억 버나 봤더니…

남사면엔 박씨처럼 새로운 종자 개발에 열을 올리는 화훼농가만 50여 곳이다. 본업인 화훼 일을 제쳐두고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1년에 종자 개발에 드는 비용은 밭 임차료 100만원, 비료비 50여만원, 농약값 50여만원 등 200여만원 정도다.

"맨날 판에 박힌 화훼 농사만 짓다가는 농업 개방 시대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죠. 패션에도 명품 브랜드가 있듯 우리도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야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라고 우장춘 박사 되지 말란 법 있나요."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남사면이 '우장춘'을 꿈꾸는 화훼 마을이 된 데는 이 마을 화훼농민 임육택(55)씨의 열정이 컸다. 임씨는 지난 1998년 이후 틈만 나면 교배를 통해 새로운 종자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거베라의 신종자 10개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거베라는 꽃이 크고 색이 화려해 화환 등으로 많이 쓰인다. 이들 종자로 얻은 지난해 수익은 3억원.

10일 오전 11시 경기도 용인 남사면의 한 비닐하우스. 흰 잎이 달린 칼라듐이 보였다. 칼라듐은 사람 심장 모양처럼 생긴 화훼용 식물로 원래 녹색 잎인데, 이 흰색 잎의 칼라듐 이름은 '화이트박'. 비닐하우스의 주인이자 신(新)종자를 개발한 화훼농민 박순교(64)씨의 성을 따 지은 이름이다. 보통 칼라듐 한 뿌리는 800원인데 '화이트박'은 1500원에 팔린다. 박씨는 신품종으로 지난해에만 4억원을 벌었다.

화이트박은 2003년 10월 박씨가 녹색 잎들 사이에서 돌연변이로 등장한 흰색 잎 하나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박씨는 "보는 순간 신기하게 생겨 사람들이 많이 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6년에 걸쳐 다양한 교배 실험을 한 결과, 2010년 5월 화이트박을 국립종자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발명품으로 치면 특허가 난 셈이다. 최근엔 네덜란드 호티스(HORTIS), 미국의 볼(Ball), 일본의 도요야케 등 외국 화훼 업체들과 로열티도 협의 중이다.

임씨는 전남 무안 무안중학교를 1973년 졸업한 게 정규학력의 전부다. 가난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임씨는 아버지가 텃밭에 취미로 키운 수선화와 백합을 따다 광주, 목포의 꽃가게에 팔기 시작하며 화훼에 뛰어들었다. 이후 1982년 일본 도쿄농업대학 연수가 임씨가 그나마 받은 전문 교육이다. 임씨는 독학으로 종자 개발을 연구했다.

마을 사람들은 임씨가 종자 개발에 몰두하자 처음엔 "신품종이란 우장춘 같은 박사들이 만드는 거지 당신이 어떻게 만드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씨가 꾸준히 신종자를 개발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새 종자를 개발하면 농가마다 한 해 1000만~2000만원씩 외국에 주는 로열티를 아낄 수도 있고, 원래 품종보다 더 비싸게 많이 팔 수도 있다"고 설득하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비닐하우스 한쪽 구석을 떼어 종자 개발을 시작했다. 성공 스토리도 등장했다. 김태석(55)씨는 '스타 팔손이'를 지난해 6월 개발해 등록했다. 원래 팔손이는 2m 길이로 정원수나 가로수로 쓰인다. 그런데 김씨는 화분에 들어가는 작은 팔손이를 만들었다. '스타 팔손이'로 지난해 2억원을 벌었다. 2010년까지 5000만~6000만원 정도가 한 해 수익이었다. 김씨는 "스타 팔손이를 내년에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재복(45)씨는 '마이다스'라는 접란(蝶蘭)을 개발해 수출길을 찾고 있다. 접란은 꽃 모양이 나비 같으며 주로 화분에 키운다. 임채우(52)씨는 '블루스타'라는 수국을 개발해 지난해 1억원어치를 팔았다. 수국은 화분이나 정원에 키우는데 여러 개 꽃이 한 줄기에 풍성하게 핀다.

이들을 비롯해 새로운 화훼 품종을 개발한 남사면 농가 6곳이 15개 특허를 내 지난해 거둔 수익은 14억원에 이른다. 임씨는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농민들이 죽는다고 난리다. 하지만 FTA는 우리가 삼성이나 현대처럼 농산품을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회이다. 내가 죽고 나서도 내 이름이 붙은 꽃이 영원히 남아 세계 곳곳에 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